물건방식 The Manner of Objects
2014.7.2 - 7.25

물건방식 The Manner of Objects 
by 이은우 Lee Eunu

 

 

 

 

전시 개요 

갤러리 팩토리의 7월 전시는 이은우의 개인전 <물건방식 The Manner of Objects>이다. 
사물의 본질은 그것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데, 작가는 그것이 상품인지 예술인지, 또는 유용한지 유용하지 않은지에 대해 사물이 갖고 있는 문화적 제도와 관습에 근거하는가를 고민한다.

작가는 사물이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보다는, 그 사물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이러한 관습적인 용법(usage)을 포착한 뒤 다른 성질의 사물과 재결합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아이디어를 작업으로 발전시키는데 있어, 사물의 쓰임새나 재료의 물질적인 속성, 각종 표준규격들을 작업의 형태로 결정짓는 원료로서의 역할을 한다.

본 전시는 그간 작가가 책, 공간설치, 오브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인 '표준과 규격' '사물의 관습적 용법'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의 형태를 빌어 전시장 안을 구성한다.

 


 

전시 글 

어떤 물건, 어떤 방식,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것들
김재석 / <아트인컬쳐> 에디터

이은우의 작업에서 다소 이질적인 텍스트에 기반을 둔 세 작업을 먼저 살펴보자. 작가는 2011년 존 발데사리의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를 인용해 연필 한 자루를 소진할 때까지 그 문장을 반복했다. 발데사리의 지루한 개념미술 작업에 지루하게 화답한 <Dear John,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는 전시장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폭 30cm의 종이에 ‘나는 더는 지루한 예술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의 영문장을 쓴 작업이다. 이에 대구하는 문장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은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을 꼽을 수 있겠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에서 주인공 바틀비가 상사의 명령에 대한 대꾸를 패널에 새긴 텍스트 작품이다. 두 부정형 문장은 다시 격한 외침과 공명한다. 2012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크고 흰 애드벌룬에 쓰인 “우리에게 향학열을 고취시킨 놈이 누구냐.” 작가는 이 문장을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발췌했다.

앞서 언급한 세 문장은 이은우가 2012년 이후 선보인 오브제 작업의 사용 설명서이자 선언문 혹은 자기 지침서처럼 들린다. 그의 작품 세계가 평면에서 오브제로 급격한 변화를 모색한 시점이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이후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마치 작가 스스로 ‘나는 더는 지루한 미술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향학열을 고취하겠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루한 미술’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향학열을 고취할 것이란 말인가? 2012년 레지던시 입주 기념으로 열린 개인전은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기호의 조합들로 가득했다. ?, 0, X와 같은 기호와 문장을 입간판, 옥외 광고물, 피켓 포맷으로 제작해 거울이 전면에 설치된 연습실이라는 전시 공간에 맞도록 연극 무대처럼 구성했다. 이전 작업에서는 작가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파편화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몇 가지 제한 조건에 따라 분류하고 편집해 시각화하는 유사-디자이너로서의 작가라는 태도가 강했다면, 2012~13년에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은 오브제를 만드는 산업 재료, 그 재료를 조합하는 방식, 작업의 유통과정을 관장하는 ‘업자로서의 예술가’라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작가-태도 변화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가 연기해 온 에디터, 엔지니어, 인테리어 디자이너, 작가라는 서로 상충하거나 교묘하게 교집합을 이루는 역할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무엇일까?

작품 제작의 출발점으로 기능하는 서로 다른 정보의 속성 때문에, 그의 작업은 종종 미술 형식보다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메시지 전달이라는 내용 측면에서 해석되곤 했다. 1905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대지주와 소농의 토지 소유 비율을 비교하기 위해 제작한 그래프를 한국의 장애인, 여성, 이주 노동자의 실태로 변주한 <무제>(2004~5), 구글어스에서 비행기로 촬영한 부분을 모눈종이에 추적 기록한 <구글 랜드스케이프>(2006), 미국 전시정보국에서 촬영한 폭격 사진 중에서 화염 부분을 파란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에 옮겨 그린 <어느 멋진 날 by OWI>(2007), 전 세계 193개국의 국기를 색과 형태의 의미에 따라 분리하고 재조합한 <국기의 색과 형태들>(2008), 2010년을 기준으로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페이지에 등록된 매매가 3억 원의 전국 아파트 평면도 1,167개를 크기, 실거래가, 준공년도로 재배열한 <300,000,000 KRW, Korea, 2010> 등이 그러한 작업에 속한다. 이 작업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사회적 소수자, 전쟁과 평화, 아파트로 표상되는 지역 간 계층 간 경제 격차 등의 이슈는 언뜻 그럴싸한 ‘사회 참여적’ 주제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업들에는 수집/분류/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논리나 질서보다는 그 정보를 재조합하며 작가가 임의대로 짝지은 미술사적 형식의 자의성이 더 강하게 부각돼 있다. 이를테면, 검은 사각형이라는 오래된 도상, 푸른 점들의 미니멀한 나열, 모눈종이의 그리드, 컬러차트처럼 나열된 국기의 색, 그 색과 패턴을 자의적으로 조합해 만든 추상적 기호들, 아파트 도면의 입방체 형상 등 말이다. 작업의 전제 조건을 셋팅하고, 그 조건 안에서 획득한 자율성을 만끽하는 유희적 작업으로는 <3, 5, 8, 9mm / W R B Y G NY NO NR NP>(2008)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서로 크기와 색이 다른 30개의 라벨 스티커를 경우의 수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해 조합/나열했다. 뒤돌아보면, 2012년 이전에 발표된 이은우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부터 말레비치까지를 거슬러 도달한, 미술사의 기하학적 영웅들을 향한 오마주처럼 읽힌다.

작가가 회화, 드로잉, 파워포인트, 출판물 등의 평면 작업에서 오브제 작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작업들에서 엿보인 비균질적인 작품의 내적 논리는 오브제 작업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는데, 그 균열의 폭이 더 커 보였다. 2013년 커먼센터에서 열린 <적합한 종류>에서 미술가 이은우는 디자이너 김영나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디자이너-되기를 실행했다. 그는 개관을 앞둔 커먼센터라는 전시 공간의 조건에서 출발, 재료(합판)의 생산 규격을 활용해 수납 기능을 갖춘 높이 240cm의 가벽 5개로 구성된 <가벽 캐비닛>(2013)을 제작했다. 전시장의 가벽과 캐비닛으로 위장된 하얀 기념비들은 너무 무거워서 실질적인 활용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반면 이 가벽들 사이에 놓인 아무런 쓸모가 없는 <보도블럭>(2013)이라는 작업은 유리용 시트지의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미니멀한 패턴을 뽑아내 그것을 아크릴판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가로 세로가 30cm인 정사각형에 두께가 1.5cm인 아크릴판 8개가 묶인 이 작품은, 가벽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부피 차이에도 가벽보다 작품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작품의 좌대처럼 깔린 통유리와 엔틱풍의 탁자용 조명 설치도 이러한 효과에 한몫을 했다. 오브제의 쓸모와 쓸모없음, 미술 작가 특유의 자의식과 사용자 편의에 충실한 디자이너로서의 태도, 전시 공간을 활용하는 이중적 태도-애초에 화이트 큐브와는 거리가 먼 커먼센터에 호출한 화이트 큐브의 문법들, 도널드 저드풍의 가구 디자인, 가벽의 기념비화, 칼 안드레풍의 바닥 조립물, 재료의 연약한 물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보도블럭’이라는 작명의 아이러니 등의 충돌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오히려 작가는 이러한 충돌의 경계 지점에 더 매료된 것은 아닐까?

산업 재료의 물성과 쓰임, 규격, 양식 등을 미술사적 언어로 해석하는 오브제 작업은 이후에도 반복된다. 디자이너 듀오 홍은주 & 김형재가 각종 인쇄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적인 사물 <인쇄물 보관상자>(2013)은 MDF, 무늬목, 강화유리로 제작된 총 10개의 서로 다른 크기를 가진 큐빅이 인쇄용지의 표준 규격에 따라 2배수의 규격으로 반복되는 작업이다. ‘미술작품’이라는 알리바이를 제공하기 위한 거추장스러운 계약서를 제외하면, 이 작품은 러시아 구축주의나 바우하우스풍의 큐빅 조형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업과 연속선상에 있는 아트스페이스풀에서 열린 <아직 모르는 집>에 출품한 <특정물건>(2013)은 간유리, 반투명거울, 무늬유리, 색유리, 망입유리 등의 유리와 원목으로 제작한 260×390×30cm 크기의 조형물로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유령의 집의 창문처럼 설치된 이 작품은 유리라는 재료를 차트식으로 조합한 게르하르트 리히터풍의 유리-회화인 셈이자, 전시장의 시선을 분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재료를 차트화한 작업은 <시공사례 1, 2>(2012)에서 극대화됐었다. 합판, 각목, 타일, 몰딩, 인테리어 조명, 우레탄 등을 높이 250cm의 바퀴가 달린 움직이는 오브제 형태로 제작한 이 작업은 각종 실내장식 재료와 조명을 샘플링한 잡지식 기념비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 작업은 “‘럭셔리’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등 한국에서 통용되는 실내 장식의 특정 양식을 기준으로 인테리어 잡지에 실린 자료 사진을 재배열한 뒤 하나의 모듈에 접합했다”고 한다. 분명 작가는 저 단어들이 지닌 역사성과 애초의 의미가 한국식으로 참조되면서 변형되고 움푹 패인 지점에 매료됐을 것이다. 이 작품은 현대무용가 장현준과 최은진의 퍼포먼스를 위한 무대 장치로 쓰인 후, 파기됐다.

일정한 기능성을 겸비한(혹은 그랬다고 여겨지는) 이은우의 오브제는 관계미학식 플랫폼으로도 안착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오히려 그 경계-미술과 디자인, 장식과 작품, 기능과 비기능성, 재료의 물질성과 구현의 한계, 작업 제작의 제한 조건과 작가의 자율성-에 또박또박 빗금을 쳐가며,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레짐작하자면, 혹시 그것은 장식 아닐까? 평철로 제작한 라디에이터를 연상케 하는 프레임에 덜렁 붙은 노란 원판, 판과 판을 시루떡처럼 쌓고 거기에 불쑥 튀어나오도록 부착한 오렌지색 삼각뿔, 비스듬하게 눕힌 푸른 판에 붙은 녹색 골프공, 흰 벽 모서리에 함몰된 듯 배치한 흰 몰딩 구조물들. 이 오브제들은 전시장 자체를, 혹은 작품의 내적 구조 안에서만큼은 매우 엉뚱하고 불필요한 장식으로만 놓여 있다. 심지어 책상과 티테이블, 등받이 없는 의자, 철재파이프 등의 표준 규격이라는 제작 사항의 제한들은 오브제의 사물성을 더욱 강화하는 장치로서만 기능할 뿐, 작업의 내적 논리를 규율하는 데는 그저 장식적으로만 여겨진다. 전제 조건을 작업의 장식으로 전치하는 이런 소격 효과는 작품을 해석할 때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이런 효과는 이은우의 작품에서 그동안 부재했던(혹은 좀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던) 내적 논리를 기이한 방식으로 획득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아직 결론을 말하긴 이르다. 전시장의 오브제들은, 오브제 그 자체보다는 오브제의 물성, 연극성, 내용과 형식, 신체성, 환영, 단위의 수학성, 비례, 표면, 자의성 등 그가 한동안 열정적으로 참조해 온 미술사의 오랜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압축한 파일-덩어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파일을 풀기 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오직 장식뿐이다. 이 작품들은 너무 장식적이다. 나는 그 장식성에서 작가 이은우의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은우의 ‘향학열’이 어디로 갈지도 미지수다.

 


-
작가 소개 
이은우는 사물이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보다는, 그 사물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나 그 관습적인 쓰임새를 원료로 작업한다. <적합한 종류>(커먼센터, 2013), <근성과 협동>(홍은주 김형재의 스튜디오, 2013), <Play Time>(문화역서울 284, 2012) 등에 참여했다. 이은우의 작업은 목재, 유리, 타일 같은 원자재의 물질적 속성과 가구 따위의 평범한 사물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와 그 관습적인 쓰임새, 유통과 변용의 방식 등에 두루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작업의 원료로 한다

 

 

 

전시 비디오 아카이브 
 

 

 

 

 

 

 

전시문의
갤러리 팩토리
전화 : 02-733-4883
이메일 : galleryfactory@gmail.com
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Overview
Title : The Manner of Objects 
Duration : July. 2, 2014 - July. 25, 2014
Artist : Lee Eunu 
Opening Reception : July. 2, 2014 
Hours : Mon.- Sun. 11:00 a.m. - 7:00 p.m.

 

Inquiry
Gallery Factory
Tel : 02-733-4833
E-mail : galleryfactory@gmail.com 
Website : www.factory483.org

 

 

118_2_b.jpg

 

118_3_b.jpg

 

118_4_b.jpg

 

- 부대 프로그램

관련글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