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하는 구조들 Para-Structures
2017.2.28-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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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장소

갤러리팩토리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전시 일정
2017년 2월 28일 (화) ~ 3월 25일 (토) 

* 별도의 오프닝 리셉션은 없으며, 추후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획
김보람, 갤러리 팩토리

참여 아티스트

김보람 Kim Borahm

 

디자인

양재형 studio Flock

 

사운드 

지미 세르 Jimmy sert

 

구조물 제작 협력

유상희 You Sanghee

 

문의
갤러리팩토리 / 02 733 4883 / www.factory483.org / galleryfactory@gmail.com

관람시간
화 - 일, 오전11시 - 저녁7시

 

 

전시 내용

 

김보람은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모바일 기기 등의 매체를 사용해 다양한 공간에서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로맨스와 무용담 (2014)>의 경우, 공연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외부 코너 공간을 위해 만든 설치 작품이었으며, <57.2도 기울어진 지형(2015)>, <무제의 산(2015)>, <무제의 열차(2016)>는 도심 속 거리(대학로)와 건물(서울 시청), 열차(지하철 4호선)를 무대 삼아 영상, 3D 입체 사운드로 공간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는 이동형 퍼포먼스 관찰극이었다.

 

이번 개인전 <기생하는 구조들>은 ‘전시 보기’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조건들로 전시를 구성한다. 관객은 전시장에 놓인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거나 과거 작업과의 연결점을 찾는데에 방해 받는다. 김보람은 다양한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 오브제(구조물)과 다양한 비물질적 요소(사운드, 기호)를 활용하여 관객을 새로운 동선으로 이끌며, 전시장 내/외부, 이웃 공간(거리, 서점, 카페, 사무실)을 거닌다. 관객은 이동하며 전시장 안과 밖의 관계를 살피고 외부의 시선으로 전시장을 관찰한다.

 

결국엔 <기생하는 구조들>은 ‘전시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의 안과 밖을 탐구하는 전시이다. 창작자의 상상이 구현되고 그것이 실현되는 공간과 일상의 공간과의 심적, 물적, 거리감이란 무엇이며,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전시 상세

<기생하는 구조들> 공연적 시선으로 전시장 들어가기.

 

1. 입장하기

관객은 전시장 입구에서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각자의 핸드폰으로 전화하기를 제안받는다. 전화의 안내자는 관객에게 전시장에 진입하는 행위에 관한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며 전시장이라는 시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시장에 도착한 관객은 입구의 안내문에

따라 각자의 핸드폰으로 전화걸기를 제안받는다.

 

 

2. 공간보기

전화를 끊은 관객은 배치된 지시문 통해 전시장의 비어있는 공간 보기를 안내 받는다. 전시장 곳곳에는 기호들이 배치되어있고 관객은 지시문에 따라 전시장 허공에 보이지 않는 구조들을 발견하게 된다. 기호들은 전시장 내부(전시 공간, 사무공간) 뿐 아니라 외부 공간으로도 연결되어있으며 관객은 전시장을 적극적으로 이동하고 기호들을 찾아다닌다. 기호는 전시장 주변의 거리, 서점, 카페, 사무실에도 배치되며, 관객은 전시장 외부로도 이동하며 전시장 안과 밖의 관계성과 외부의 시선으로 전시장을 관찰한다.

 

‘관객은 전시장 내부와 외부에 놓여진 기호들을 찾아 가상의 선, 면, 입체적 형태를

만들며 전시장의 여러 관계망에 대한 비선형적 상태를 제시받는다.

 

3. 작품관람

관객은 전시장의 치우진 공간과 코너(일반적으로 작품을 배치하지 않는 공간)에 놓인 구조물을 관람하라는 제시를 받는다. 구조물은 '작동하는 구조물'과 '작용하는 구조물'로 나뉜다.

 

‘작동하는 구조물’

관객이 직접 손으로 구조물을 만지고 움직일 수 있다.

이 구조물의 형태는 전시와 전시 공간, 관련 인물 간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들을 형상화 한 것으로 ‘관계’에서 파생되는 여러 형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각 구조물의 작동법에 대한 설명이 있다. 관객은 매뉴얼에 따라 자유롭게

각도를 조정하고 전시장을 이동하며 구조물을 갖고 놀 수 있다.‘

 

‘작용하는 구조물’

‘작용하는 구조물’은 전시장에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언어와 의미, 지나간 전시들의 흔적을 위한 구조이다. 관객은 웹 링크를 통해 각 구조물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관한 시뮬레이션 영상을 관람 할 수 있다.

 

‘작용하는 구조물’의 경우 인터넷 웹링크를 통해 공간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관한 시뮬레이션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4. 배경사운드

전시 공간 곳곳에는 작은 스피커를 통해 사운드가 배치된다. 이 소리는 갤러리에서 약 12년간 진행되어온 전시들과 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기획자, 큐레이터, 지인들)의 인터뷰, 회의 소리, 일상의 소음을 모티브로 하는 전시 시공간의 보이지 않는 흔적들에 관한 사운드이다.

 

작가 소개

 

김보람 Kim Borahm

 

김보람은 공간의 상태를 가상의 공간과 실제의 공간으로 나누어본다. 
가상의 공간은 창작자의 상상이 실체화되어 놓여진 공간으로 전시장이나 무대, 영상 속 공간 등을 의미하고, 실제의 공간은 일상의 공간으로, 일상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보이지 않고 묻혀지는 공간이다. 이 두개의 공간이 중첩되는 상황을 만들어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 공간의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고 있다.

 

 

 

 

 

 

전시평

 

기억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기억

- 김보람 개인전, <기생하는 구조들> 리뷰 -

손 옥 주 (공연학자)

 

장소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의 힘은 위대하다.

-키케로

 

공간을 체험하는 또 하나의 방식

 

갤러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창에 붙은 흰색 다이어그램을 바라본다. 시선은 평소 전시공간을 투사해내던 갤러리 전면의 유리창, 그 투명한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자연스레 다이어그램의 맨 꼭대기로 향한다. 전시 관람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등의 여부를 묻는 항목에 ‘Yes'를 선택했다면, 전개 순서에 따라 다이어그램 가장 아래에 적힌 낮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한다.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를 따라 갤러리 문을 연다. 입구 바닥에 부착된 각도 표시를 따라 천천히 문을 열며, 입장하기에 너무 비좁거나 적당하거나 꽤나 넓은 문틈의 간격에 대해 생각한다. 이처럼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서성이는 순간 문득, 갤러리 공간이 어느새 제의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시간의 매개가 되어있음을 느낀다.

 

2월 28일부터 3월 30일까지 갤러리 팩토리에서 진행되는 김보람 작가의 개인전 <기생하는 구조들>은 이처럼 화이트 큐브 갤러리가 대표해온 물질적 공간성을 비물질적 시간으로 환원시키고자하는 시도들로 점철된다. 아니, 어쩌면 인터미디어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작가의 시도는 단순히 ‘갤러리’ 혹은 ‘오브제’가 상징하는 물질성과 ‘퍼포먼스’로 대표되는 비 물질성 사이의 환원을 의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갤러리 공간과 그곳에 전시된 오브제에 포개어져있던 움직임의 가능성들을 한 겹 한 겹 들춰내는 과정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과정 안에서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는 다양한 층위의 미디어들, 그 이면에 주목하고자했던 작가의 노력은 갤러리 공간을 감성의 아카이브, 기억의 아카이브로 거듭나게 한다. 이 공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나는 왜 하필 지금 이 낯선 곳에서 까마득하기만 한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기생하는 구조들>은 이처럼 일순간 떠올랐다 사그라지는 질문들 속에서 각각의 체험자들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 잠재해있던 어떠한 움직임을 발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일상적 움직임이나 자신을 둘러싼 익숙한 환경을 낯설게 감각하게끔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핸드폰과 전시장 내 스피커, 그리고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갤러리 안과 밖을 걸어 다니는 전시 방문객에 대한 표현으로는 자신이 움직이는 시공간을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관객이나 관람객, 혹은 참여자 보다는 ‘체험자’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2015년에 대학로 생태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표한 <57.2도 기울어진 지형>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이동형 체험’이라고 언급했다는 사실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갤러리 풍경, 공동 상상의 조건들

 

<기생하는 구조들>의 진행 방식을 시공간적으로 조금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목제 오브제들이 놓여있는 갤러리 1층 → 마찬가지로 작가가 고안해낸 기하학적 도형들이 벽에 걸려있는 갤러리 1층의 후면 공간 →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 스탭들이 근무하고 있는 갤러리 2층의 사무실 → 갤러리 옆 건물에 위치한 카페 mk2 → 맞은편 건물에 위치한 서점 더북소사이어티 → 마지막에는 다시 갤러리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개별적으로 출발한 체험자들은 이처럼 갤러리 안과 밖에 위치한 공간들을 이곳저곳에 붙어있는 안내 문구나 MP3 플레이어의 음성 지시에 따라 순차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공연의 드라마투르그적 요소를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시공간적 상황에 적용시켰다고도 볼 수 있는 이 같은 구성적 흐름을 통해 각각의 체험자는 동일한 공간 조건들을 다른 시간 안에서 상상/감상/전유하게 된다.

 

사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MP3 플레이어 등의 기기를 매개로 움직임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 시절, 목조 작업에서부터 시작된 김보람 작가의 활동은 디지털미디어 작업을 거쳐 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미디어 퍼포먼스 형식으로까지 확장되었는데, 이 같은 작업 방식은 2015년의 <57.2도 기울어진 지형>에서부터 출발하여 <무제의 산>(2015, 하이서울페스티벌)과 <무제의 열차>(2016,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거쳐 2016년 12월 남원 함파우 소리체험관에서 개최된 남원 사운드 아티스트 레지던시 쇼케이스 작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가령, <무제의 산>에서는 체험자들이 헤드폰과 태블릿을 통해 전달되는 시청각 정보들을 따라 서울시청 신관과 광장, 그리고 현재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는 구시청 건물로 이동했으며, 그 다음 작업인 <무제의 열차>에서는 마찬가지로 제공된 헤드폰과 태블릿을 지참한 채 안산 지역을 통과하는 4호선 열차에 올라 열차의 각 량을 이동하며 영상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동시 체험하였다. 이후, 스마트폰 앱 프로그램이 활용된 남원 쇼케이스에서는 이전의 작업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남원 현지에서 채집한 사물들(다양한 길이의 나뭇가지 등)을 작가가 스튜디오 공간 안에 전시/배치하고, 바로 그 사물을 체험자들이 다시 개별적으로 전시/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과정 중에 체험자들의 행위는 전시의 과정으로, 그리고 체험자 개개인은 공동의 전시를 만들어내는 콜렉티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러나 김보람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위에서 언급한 이전 작업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특히 작가가 고안해낸 퍼포먼스의 형식이 처음으로 갤러리 공간과 만났다는 점에서, <기생하는 구조들>은 작가의 최근 활동에 새로이 첨부되는 각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갤러리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멀리는 이브 클라인이나 트리샤 브라운에서부터 가깝게는 자비에 르 루아나 라 리보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작업에서 유독 공통적으로 몸의 현전이 부각된다는 점 또한 어렵지 않게 간파할 것이다. 이는 노이에스 무제움(Neues Museum)이나 맥시(MAXXI) 등 거대한 규모의 뮤지엄에서 군무를 시도한 바 있는 안무가 사샤 발츠의 경우와는 달리, 특히 중소규모의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퍼포먼스가 그 어원상 움직임의 대형(formation)에 강조점을 두는 안무(choreography), 즉 공간 안에서 춤(choros: 윤무)을 직조해내는데(graphein: 쓰다) 있어 조건상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과 연관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간 조건에 따른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갤러리 퍼포먼스 작업들은 몸 혹은 몸의 움직임이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그 주위를 다수의 관람객들이 에워싸는 형식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공통점을 보인다. 이 같은 형식은 국내의 경우,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예기치 않은> 프로젝트(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진행)의 일환으로 발표된 퍼포먼스 중 다수의 작업들을 통해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퍼포머와 관람객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제 4의 벽이 세워지는 동안, 퍼포머의 몸, 그리고 그 몸에서 뻗어 나오는 움직임의 강도는 관람객에게 있어 점차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이처럼 공연장화 되어버린 갤러리 공간은 오랜 세월동안 기존의 공연장에 적용되어온 특정 규율들을 공유해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김보람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자칫 규율적이거나 인위적이라고 느껴질 법한 소통 방식을 갤러리 공간 안에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오히려 역으로 관람객과 전시 오브제 사이의 개입 불가능한 벽을 허문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핸드폰이나 MP3 플레이어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관람객이 해야 할 일과 가야할 곳을 정해주는 바로 그 목소리의 정체가 일방향적인 지시 문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기를 매개삼아 관람객의 귓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소리. 바로 그 소리를 통해 관람객은 오히려 그동안 쉽게 스쳐지나갔던 환경에 대해 새로이 인지하는 동시에, 자기 안에 잠재해있던 기억 또한 ‘지금, 여기’로 소환시키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작가는 개인별로 착용 가능한 미디어기기를 도입하여 군중 안에 숨어있던 기존의 퍼포먼스 관람객들을 개별적 체험자로 분리시켜냄으로써, 관람 대상과 관람 주체 사이의 관계를 평등한 중립적 관계로 전환시키기에 이른다. 관람객이 시공간을 온전히 개별적으로 체험하는 한에서 오브제는 감상의 대상을 뛰어넘어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과거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기억의 촉매제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문과 벽에 붙은 다이어그램, 목제 오브제, 기하학적 도형들, 2층에서 자신들의 업무를 이어나가던 갤러리 스탭들, 갤러리 사무실 한 가운데 꽂혀있던 Versus 잡지, 갤러리 앞에 놓인 2차선 도로, 카페, 서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걷고 느꼈던 체험자 등, <기생하는 구조들> 속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곧 일종의 ‘공동 상상’*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몸에 몸을 얹어 기생함으로써 또 하나의 공생을 꿈꾸는, 그런.

 

공간의 유령, 되찾은 기억의 흔적

 

빠른 속도로 바뀌어간 안산의 지형을 그곳 시민들의 기억을 빌어 다시금 상상해보고자 했던 <무제의 열차>. 이 작품의 제작 당시 작가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러나 분명 그곳에 있었고 여전히 안산 시민들의 기억 속에 현재형으로 남아있는 공간들에 대해 ‘공간의 유령’이라 칭한 바 있다. 유령 같은 공간들. 지금 우리 눈앞에 반드시 실제(實際)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 실재(實在)하는, 다른 차원의 현재. 계획된 공간 안에 놓여있지만 ‘계획’이라는 선험적 조건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빠져나가는 ‘공간의 유령’은 데리다의 말처럼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사이의 대립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하나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비록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눈앞에 부재하는 시공간, 이제는 추억과 기억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린 바로 그 시공간이라 할지라도, 이마저 숙명처럼 긍정할 수밖에 없는 예술 행위에 대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기생하는 구조들>의 동선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이전에는 미처 단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던 갤러리 구석구석에, 길가의 보도블럭에, 카페 종업원의 손짓에, 서점으로 향하던 돌계단에 새삼스레 눈을 맞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미술 전시회를, 언젠가 먼 길을 물어물어 찾아갔던 담쟁이 넝쿨로 둘러싸인 오래된 카페를, 유독 볕이 좋았던 어느 해 초봄의 하루를, 그리고 그 볕을 함께 쬐던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한다. 몸에 몸을 층층이 포개놓은, 약 15분간의 시간을 거닌 후에 다시 마주하게 된 갤러리. 이미 기억 한 겹이 벗겨진 채 서있던 그곳에는 새로이 누군가가 들어서고 있었다.

 

* '공동 상상(co-imagination)'이라는 용어는 무용학자 앙드레 레페키가 자신이 담당했던 무용 드라마투르그로서의 역할을 정의할 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다. 레페키는 ‘공동 안무가’나 ‘공동 제작자’라는 용어를 ‘공동 상상’이라는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창의적·상상적 과정으로서의 작품 창작에 주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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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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