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팩토리 15주년 특강(02. 타피오 비르까라 탄생 100주년 회고 전시)

홍보라님 (갤러리 팩토리 디렉터, 이하 홍): <Wirkkala Revisited>는 그 결과물을 보는 것 이전에, 어떻게 이 전시까지 이르게 됐는지 여정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비록 길지만 이번 갤러리 팩토리 15주년 기념 특강에서, ‘Wirkkala’ (이하 비르까라) 전시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말씀드릴 거예요.

비르까라에 대해 말씀 드리기 이전에, 제가 기획한 디자인 전시인 <노르딕데이>가 먼저 있었어요. 시작은 다소 갑작스러웠죠, 2012년에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북유럽과 관련된 전시를 하고 싶은데, 마침 제가 북유럽에 갔다 올 예정이었으니 여행가는 겸 리서치를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구석구석 보면서 잘 돌아왔어요. 용기 내서 제안서를 썼고 그러다가 채택이 되어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너무 일방적이기만 하고 레이어가 없는 전시에 대해 줄곧 불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시가 경험을 통한 ‘배움의 장’이 되기 위해 아카이브를 넣고, 음악도 들어가고 여러모로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이었으면 해서 웬만한 실험을 다 한 것 같아요. 노네임노샵이 저희와 파트너쉽으로 디자인 작업을 했고요. 오늘 오신 이혜연씨가 초기 멤버 중 한 분이고, 이따 디자인관련 이야기를 많이 해주실 거예요.

전시는 일종의 네러티브가 있길 바랐어요. 삶을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디자인을 다루길 원했죠: 삶의 환경, 그 특수성 등. 핀란드에 갔을 때 비록 거기에 사는 이들에겐 흔할지언정 타지에서 온 사람이 볼 때 특이했던 점이라든지, 흥미롭지 않던 부분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그런 걸 발견하는 방식으로 전시 방향을 잡았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문화에 대해 좀 알게 되는 계기였어요. 아카이빙 세션은 북소사이어티에게 큐레이팅 부탁했고 그들이 굉장히 좋은 책들을 큐레이팅 해줬는데, 그 책들이 되게 귀한 책들이어서 책을 보러 반복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실제로도 계속 반복해서 보게 되는, 올 때마다 새로운 걸 얻어가는 전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2013년에 프랑스문화원 본부에서 전세계 큐레이터들을 1~2년에 한번씩 초대하는 데에 뽑히게 되었어요. 거기에 헬싱키디자인의 젊은 큐레이터 ‘수비’란 분이 왔고, 정말 거침없고 에너지가 좋은 친구였죠. 그녀는 디제이 및 큐레이터로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파격적으로 핀란드로 돌아가서 큐레이팅 한 케이스예요. 제가 큐레이터 레지던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던 즈음, 수비가 제게 혹시 <Wirkkala revisited>이라는 전시 큐레이팅을 해볼 의향 있느냐고 물었어요. 비르까라는 핀란드의 디자이너이고, 당시에 100주년을 맞아서 전시가 열리던 참이었어요. 비르까라는 손으로 만드는 작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장인들과의 여러 협업을 통해, 보드카 병 같은 사소한 물건부터 핀에어 디자인까지 맡은 사람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앙드레 김 급으로 그 나라에서 아주 유명하고 대대로 국가의 디자이너로 홍보되던 분이었습니다. 왜 수비는 비르까라가 생소하기만 한 제게 전시 큐레이팅을 부탁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이후에 제가 진행한 전시 중 <노르딕데이>의 ‘staged narrative(연극적 구조)’라는 속성이 특히 재미있었다고 해요: 안과 밖의 개념이 없는 공간 구성이라든지, 마치 누가 사는 공간인 것처럼 세팅을 만들어서, 입구에서 방을 구경할 수 있고 방 바로 정면에 스웨덴 작가의 작업이 디피되는 형식이라든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된 <Death of the collector>로 유명해진 Elmgreen & Dragset 작가 분들을 마침 수비가 만났어요. 노르딕 파빌리온에서 그들의 <The Collectors>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공간 자체를 사람이 사는 듯한 이야기들을 숨겨놓은 느낌으로, 그러한 베이스로 리서치를 시작했어요.

컬렉션 디렉터와 소장품을 다루시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랑 미팅을 해서 제가 그들에게 책을 한 권 받았는데, 비르까라가 몇 년 전에 retrospective 전시를 크게 하고 나온 자료집이었습니다. 다만 이미 비르까라 100주년을 축하하는 전시가 대규모로 열렸기에, 제가 진행할 전시는 보다 작은 규모로 재기 발랄하게 했으면 하더라고요. 가장 제 관심을 끈 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손의 이미지였어요. 디자이너임에도 매뉴얼한 작업의 중요성이 되게 드러났습니다. 전시 전면에 손을 중심으로 하면 어떨까 했어요. 제가 오히려 아예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책에서 나온 이미지 몇 개를 가지고 신선한 전시를 만들 수 있던 것 같아요. 더불어 비르까라의 협업자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무가나 무용가, 여러 연관된 기관들이 전시에서 보였으면 해서 핀란드의 Aalto University, 그리고 EMMA 미술관, 그리고 Dance Info라는 헬싱키의 예술단체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전시 중에 토크 세션도 했으면 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과 손을 주제로 하는 댄스 필름 같은 커미션 필름도 만들고 싶었어요 비록 마지막은 실현되지 못했지만요.

제게 중요했던 것은 ‘beyond representation’이었습니다. 구조, 키워드, 컨셉 등을 만들어서 단순히 비르까라의 오브제를 보여주는 걸로 그치지 않고, 현대의 작가가 현대적으로 그 오브제들을 재해석하는 시도도 전시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굳이 전시장 안에 모든 작품들을 설치하는 게 아니라, ‘In and Out’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접근했어요. 전시를 위해 이루어진 작은 회의 등등도 모두 아카이브로 가져오고, 하나밖에 없는 작업을 대량으로, 손의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오브제를 3d 프린터라는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놓는 등, 밀도를 높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당시의 노동은 철저하게 수작업이 주 노동방식인 데에 비해 현대에 와서는 코딩, 3d 프린팅 등 매뉴얼한 노동에서 벗어난 노동임을 병치해서 보여주고 싶었죠. 하이테크놀로지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손의 기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그리고 아카이브가 단순 기록용 장소가 아니라 토론의 장이라는 걸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비르까라 본인에게도 ‘Thinking Hands’, 즉 생각하는 손이 매우 중요한 컨셉이었어요. 드로잉 하는 게 뇌를 같이 쓰고 있는 증거이자, 손이 단순 노동이 아니라 생각 자체라는 것입니다.

전시 디자이너가 필요하여 노네임노샵의 이혜연, 김종범씨와 파트너로 일하게 됐어요. 전시 공간에 대한 도면제도가 제대로 안돼 있어서 혜연씨가 스케치를 다 하고 입체화 시키는 엄청난 작업까지 다 거치셨습니다. 곧이어 비르까라의 정신이 담긴 작업들을 같이 리서치 해보며, 바라건대 가능하면 비르까라가 직접 디자인한 일반 조명을 사용하고 전시 공간이 오픈 스페이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굳혔고, 그리 되었어요. 또한 사람들이 만드는 다양한 사운드가 녹음돼서 작업의 일환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practice’, ‘versus, ‘project unrealized’가 중요 키워드 들이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연습이 쌓여서 결과를 만드는 행위, 계획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들, 새로운 노동, 이슈들에 대한 것들이요. 어떤 유명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이고 축하할 때, 다양한 방식의 보여주기가 있는데 사람들이 예측하지 않은 다양한 것들이 나왔으면 했어요. 디자인에서는 정리된 팩트 중심의 언어가 기본 전제이지만, 이러한 점이 제게는 재미가 없어서 약간의 순수미술가적 태도를 취하여 이를 비틀었어요: 스크리닝 세션을 만들어서 손하고 관련 있는 작업들을 한 한국작가 네 명의 영상작업을 상영했어요. ‘Hand That Talks/Makes’ 등등 총 4개의 세션을 만들었습니다. 이신애 작가는 정보 베이스 작업이 아니며 직선적 네러티브가 아닌 영상을 만드셔서, 끝이 열린 이야기성을 통해 전시 공간 속에서 숨을 터줄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전소정 작가의 미싱사 작업은 자수를 통해 추상적인 드로잉을 만들고 내면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외에도 케이블 노동자에 대한, 한국특수적 풍광과 반복적인 프랙티스를 보이는 작업 등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혜연씨가 전시 디자인에 관해 더 말씀해주실 거예요.

이혜연 (노네임노샵의 디자이너): 2013~14년이 김종범씨와 거의 둘만 작업실에 있던 시기였으니, 사실상 독립적으로 일을 하던 시기였어요. 비르까라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었고, 탄생 100주년 시기를 맞아 전시를 하는 공간도 되게 복잡했어요. 핀란드라 지하는 벙커이고 그 건물이 예전에는 학교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전시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옛 건물이라 기둥도 많고…... 동선이 방해 받는 상황이어서 기둥 사이사이 여유 공간이 있어야 했으니 이동 거리 등의 여러 거리감을 계산했어요. 공간을 디자인 하면서 헬싱키와 한국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진행할지도 고민이었네요. 예전 전시 상황 예시들이 다 되게 컴펙트 해서, 역시 공간에 의지하는 것 보다는 하나하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섬세하고 지시적인 섹션들을 만드는 게 적합할 것 같았습니다. 홍보라님이 기획한 이야기와,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적절하고 엄밀한 것들을 선정하는 게 관건이었죠. 비르까라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어떻게 재해석 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중, 아주 작은 물건부터 큰 것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게 디자이너의 역량을 잘 드러낼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도면형식의 드로잉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요소들을 담은 드로잉들을 벽에 디스플레이 했고, 2d를 3d로 보는 느낌의 결과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전시 디자인 컨셉으로는 보이는 방식을 다르게 해보려는 결심이 가장 컸어요. 존 버저의 ‘Ways of Seeing’을 참조하여 어떻게 작품처럼 보일 것인지,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보기 방식에 집중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노동의 개념을 매우 존경해요. 고로 노동에 대한 드로잉들도 많았죠. 벽면에 비르까라가 한 드로잉들 또한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핀란드의 풍광, 자연이 주는 영감들을 주제로 한 드로잉들도 걸었습니다. 비르까라의 손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중요했어요. 이는 손 드로잉으로 해결했습니다. 전체적인 드로잉 사이즈를 키워서 손으로 하는 작업의 강도와 비중을 높였습니다. 공간들이 모두 이어져있으니 반투명한 패브릭으로 중간중간을 차단했으면 했는데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네요. 비르까라의 여러 작업 중, 재질이나 모양이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유리공예가 많아서 그런 것들을 ‘펼쳐서’ 보여주는, 새로운 보기에 일조하면 어떨까 했으므로, 물건을 회전축으로 돌려서 파노라마로 찍는 방식으로 매우 예쁜 사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역으로 만들어보는 프로세스를 대변하는, 만져볼 수 있는 3d 프린팅한 입체물들도 첨부했어요. 재료와 공감하는 태도가 정말 중시되었습니다. 도구 하나하나에 비르까라가 애착을 가졌었거든요. 마지막으로 ‘Outro Zone’에서는 비르까라의 다양한 색감과 미감을 보여주는, 특이한 색들의 유리병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선반들을 만들어서 여러 자료와 모니터를 놓고, 그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거쳤죠. 스크리닝 룸은 천장까지 까맣게 칠하기를 원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네요 (웃음).

홍: 정말 비르까라와 그의 작업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태로, 용기 있게 시작한 큐레이팅이었습니다. <Wirkkala Revisited>가 보니 알고 너무나도 논란의 중심에 있던 전시였어요. 핀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비르까라를 프로모션 하다 보니, 저와 같이 외국에서 온 사람이 무려 그 비르까라를 큐레이팅 하는 거라 알게 모르게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네요. 기자회견 하는 날에도 저의 거침없는 솔직함과 소감에 흠칫 다들 놀라는 분위기더라고요. 끝나고 나오는데 마리아 비르까라, 즉 타피오 비르까라의 따님과 마주치게 되었어요. 같은 시기에 그분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아버지에 관한 전시를 했었는데, 다행히도 저희가 비르까라의 여러 작품들과 작업 철학 하나하나에 큰 애정을 가지고 진행했단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네요. 오프닝도 크게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세상이 비록 국가 단위로 나뉘어져 있지만 결국 다들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있는 것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라는 관념은,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저와 이 전시에 참여한 이들에게 중요한 작업태도가 되었습니다. 이혜연씨와 김종범씨는 ‘프랙티스’라는 전시도 하게 되었고, 저의 경우 2016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한국 파빌리온 예술감독이 되면서 더 확대된 개념으로 <Making is Thinking is Making>을 기획했어요. 저희에게 또 하나의 큰 계기가 된 전시였기에, 갤러리 팩토리 15주년 특강 기념 두 번째로 이 전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