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콧등작은미술관 기획전 <메밀맡 끝나는 곳 너머>
2019.9.5.(목) ~ 2019.11.1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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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콧등작은미술관 기획전 <메밀밭 끝나는 곳 너머>​

 

참여작가

박현성x황예지, 리따 이코넨x캐롤리네 요로쓰, 서울로, 이소영


날짜

2019.9.5.(목) ~ 2019.11.13.(수)

 

운영시간
10:00 ~ 17:00 (매주 월요일, 9.13 추석 휴관)

 

장소

봉평콧등작은미술관 (강원 평창군 봉평면 덕거길 7-1)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평창군문화예술재단

후원  평창군, 국민체육진흥공단

기획  팩토리콜렉티브  

 

 

여기 너머 ‘저 곳’을 상상할 때,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조우할 때 삶은 조금 더 기대되고 흥미로우며 확장된다. 전시 《메밀밭 끝나는 곳 너머》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인간과 동반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메밀꽃과 문학이 만나는 봉평에서의 이번 전시는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산, 물, 들, 바람을 삶의 조건 삼아 일평생을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담은 사진 작품들과(리따 이코넨x캐롤리네 요르쓰), 이제는 노인이 된 콧등미술관의 전신인 덕거 국민학교의 1회 졸업생들과 덕거리 마을 사람들, 정물을 담아낸 사진 작업(박현성x황예지), 메밀꽃을 풍경이 아닌 식물학적으로 접근한 세밀화 작업(이소영)과 자연의 유기적인 요소를 그래픽적인 오브제로 표현한 작품(서울로) 등 네 팀의 작업을 선보인다. 

 

누군가의 삶의 단면, 멈춰 선 풍경들은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때로는 보편적인 일상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봉평의 아름다운 풍경 너머 선명하게 움직이는 존재들, 살아있는 기억들, ‘너머'를 그려보는 상상들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

 

 

전시 리뷰

 

메밀밭 끝나는 곳 너머

-선명한 땅의 시간, 흩어지는 상상의 시간을 오가며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전시를 계획하며 찾아간 늦은 봄의 봉평은 초록의 밭이었고 아직 그 초록의 땅 속에서 무엇이 자라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푸르른 밭들을 바라보며 언젠간 이 초록들이 히트 친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의 배경이 되고 소설의 한 구절처럼 ‘숨이 막힐 지경의 달빛 아래,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이 흐드러질 거라고 계속해서 상상했다. 어쩌면 우리는 발 딪고 있는 땅의 세계와 현실을 한참 너머 선 상상의 세계, 두 세계를 거듭 넘나들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시 <메밀밭 끝나는 곳 너머>는 선명하게 마주하고 있는 땅의 세계와 꿈처럼 흩어지는 상상의 세계가 뒤섞여 있고 그 땅의 시간과 상상의 시간은 문학이 되고 음악이 되고 미술이 된다. 

 

‘Fagopyrum esculentum Moench’. 흡사 마법의 주문 같은 이 단어는 메밀의 학명(學名)이다. 더듬어 읽어야 겨우 끝까지 불러 볼 수 있다.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메밀 세밀화>는 봉평에 핀 올해의 첫 메밀꽃을 채집하여 그린 것으로 정직하고 정확한 그림이다. 메밀은 몸에도 좋고 맛도 좋으며 눈꽃처럼 흐드러진 메밀 꽃밭은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잎사귀 하나하나를, 꽃술의 모양을, 뿌리와 가지의 생김을 구석구석 들여다볼 때, 작은 것들의 세계가 눈 안에 들어올 때 풍경은 비로소 존재가 된다.  

 

<메밀 세밀화>가 구상의 세계라면 김나래, 장지혜로 구성된 서울로 팀의 <돌출된 표면>은 추상의 세계다. 이 오브제들이 갖고 있는 모양은 과학책에서 본 듯한 익숙함이 있다. 마치 세포의 기본 단위, 입자 하나를 현미경으로 확대해 놓은 듯하다. 이것들이 이리 섞이고 저리 뒤엉켜 또 다른 유기적인 모양새를 금세 갖출 것 같다가도 막상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이 오브제들을 만져보면 차갑고 딱딱해 아차! 싶다. 자연적이라고 믿었던 감각과 인공적이라고 상정한 방법이 충돌하며 예상치 못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이라는 현존하는 세계와 ‘자연적’이라고 판단하는 단호한 믿음. 그리고 이 세계와 믿음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조화로움은 자연과 자연적(이 아닌)인 것의 관계, 그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미술관의 모양을 갖추기 전 과거 학교였던 시절의 복도쯤이었겠구나 연상케 하며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사진들은 리따 이코넨과 캐롤리네 요르쓰의 <Eyes as Big as Plates, PyeongChang>이다. 2016년 여름, 평창읍 조동리에서 만난 부부 백복희, 정철화 님과 2017년 겨울, 대관령면 차항리에서 만난 박제동, 오규명, 심영자, 최동순 님을 담은 사진이다. 이들에게 자연은 때론 두려움이었고 벗이기도 하며 벗어나고 싶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고향이었다. 먼 나라에서 온 두 작가는 한 명 한 명과 정성스레 나눈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입거나 쓸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든다. 이 오브제들은 이야기의 주인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자연스러워지고 완성된다. 

 

이 전시에서 인간이 자연 혹은 ‘자연적인 것’과 만나길 바랐고, 현실과 상상이 만나는 장소였으면 했다. 또 다른 예사롭지 않았던 만남은 두 명의 사진작가와 덕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만남이다. 봉평의 사람과 자연을 담은 박현성, 황예지 작가는 전원의 삶을 낭만적으로 그리거나 자연물을 사진에 담아 작품화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 ‘서울에서 온 젊은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마음을 다해 만날 수 있을까만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구나 자주 느꼈다. 어느 집 정원의 돌은 김학철 할아버지를 닮았고 이상하게도 그 옆의 돌은 김진남 할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기뻐했다. 불쑥 찾아간 집에서는 호박과 감자 한 포대를 선뜻 받아 7명이 나누어 갖은 음식을 해 먹었다. 낭만이 아니라 다정함이었고 타인에게 기대치 않던 다정함을 느낄 때 위로받고 용기도 얻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마도 박현성, 황예지 작가의 <내가 밟은 것은 흙이요>에 담긴 정물과 얼굴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다정함을 의심 없이 카메라로 전달하려는 태도, 한 곳에서 나고 자라 노인으로 접어드는 사람에 대한 경외감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 일지도 모르겠다. 

 

전시를 잘 설명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전시를 만들었던 한 계절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메밀밭 끝나는 곳 너머>를 통한 만남의 기억들은 소설 속 허생원의 ‘젊은 시절의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과 같을지 모르나 달이 유독 밝은 밤이면 계속 곱씹고 싶은 흐드러지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안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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