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2009.3.13_4.5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1992, 2004, 2009)
by 최성민


 

 



2009년 갤러리팩토리의 전시 프로그램인 오늘의 디자이너 전시 <최성민 개인전>으로 진행된다.
최슬기와 함께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최성민의 첫 개인전이다. 이 전시에서 최성민은 다소 도착적인 방식으로 그가 출발한 지점을 되짚어 본다. 바로 타이포그래피와 그 역사이다.

지난 14년간 최성민은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의 <현대 타이포그래피: 비판적 역사 에세이>(Modern typography: an essay in critical history, 초판 1992, 개정판 2004)에 독특하게 집착해 왔다. 1995년 여름 번역에 착수한 그는, 이후 다섯 차례 이상 그 책을 한국어로 옮겼고, 스무 차례 이상 상상의 한국어판을 디자인했다. 마침내 2009년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을 정식 발간하는 그는, 전시라는 형태로 그 번역 과정을 연장하려 한다. 아니, 이제 그의 삶에서 일부분처럼 되어 버린 그 텍스트를 조금이나마 더 오래 부둥켜 안으려 한다.

전시는 <현대 타이포그래피> 정식 한국어판을 통해 보일 수 없는 측면을 보이고 나누는 기회로 쓰인다. 최성민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책에 실리는 '도판'들이다.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 14장 '보기'> 연작은 책에 실린 도판들마저 한국어로 옮기려는 시도이다. 킨로스는 2004년 발행된 <현대 타이포그래피> 개정판에서 도판이 실린 장을 완전히 새로 꾸몄는데, 최성민의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 13장 '보기'>는 잊혀진 초판 장을 다시 꺼내 또 다른 책으로서 부활시키려 한다.

그렇게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1992, 2004, 2009)'는 타이포그래피와 그 역사에 대한 전시이지만, 동시에 번역이라는 개념적 치환 과정에 대한 전시이자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에 대한 전시이기도 하다. 



사실, 시도: 
또는 수사적 질문에 답하기 

이지원 
불문학자, 소설가


처음 만난 최성민은 자신을 굳이 ‘그래픽 디자이너’라 소개한다. ‘타이포그래퍼’처럼 더 근사한 말을 기대했건만. 오히려 타이포그래피 역사에 대해서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자연히 갖게 된 호기심 이상 전문적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 * *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지은이 로빈 킨로스가 직접 운영하는 런던 하이픈 프레스에서 1992년 초판을 펴냈다. 1994년에는 부분적으로 수정한 2쇄가 나왔다. 2판은 2004년, 역시 하이픈 프레스에서, 크게 개정된 형태로 펴냈다. 한국어판은 옮긴이 최성민이 최슬기와 함께 운영하는 용인 스펙터 프레스가 2009년 펴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 판형은 170×240밀리미터, 쪽수는 208쪽이다. 2판 판형은 125×210밀리미터, 쪽수는 272쪽이다. 한국어판 판형은 135×216밀리미터, 쪽수는 320쪽이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 지면은 두 단으로 나뉘었다. 오른쪽 넓은 단에는 본문을, 왼쪽 좁은 단에는 주석을 배치했다. 주석은 지면 아래 여백 선에 본문과 나란히 정렬했다. 활자체는 모노타이프 에르하르트 (Monotype Ehrhardt) 하나만 쓰였다. 2판 지면은 한 단으로 구성되었다. 주석은, 펼친 면을 기준으로, 오른쪽 지면 아래에 모아 배치했다. 활자체는 프레드 스메이어르스(Fred Smeijers)가 디자인한 아른험(Arnhem) 하나만 썼다. 한국어판 지면은 영어 2판처럼 한 단으로 구성되었지만, 주석은 해당 지면 아래에 배치했다. 따라서 왼쪽 지면에도 주석이 나타난다. 활자체는 윤디자인연구소가 디자인한 윤명조와 윤고딕, 헨드리크 베버(Hendrik Weber)가 디자인한 리리코(Lirico), 카이 베르나우(Kai Bernau)가 디자인한 뉴트럴(Neutral)이 쓰였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은 로빈 킨로스가 직접 디자인하고 쿼크익스프레스 3.0에서 조판했다. 2판은 헤이그의 프랑수아 베르세릭(Francoise Berserik)이 디자인했고, 네덜란드 네이 베이츠의 퇴스 더 용(Teus de Jong)이 어도비 인디자인에서 조판했다. 한국어판은 최성민이 최슬기와 함께 디자인했고, 최성민이 어도비 인디자인 CS3에서 조판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은 네덜란드 쥐트펀의 나우타(Nauta) 인쇄소가, 2판은 네덜란드 네이메헌의 토번 오프셋(Thoben Offset)이 인쇄했다. 한국어판은 서울의 으뜸 프로세스가 인쇄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 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는 0-907259-05-7이다. 2판은 0-907259-18-9 / 978-0-907259-18-3, 한국어판은 978-89-93061-09-3이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에서, 대부분 지면에는 미색 무광택지가, 13장 ‘보기’(총 32쪽)에는 백색 반광택지가 쓰였다. 2판에서, 대부분 지면에는 미색 무광택지가, 14장 ‘보기’(앞뒤 설명 한 쪽씩 빼고 총 48쪽)에는 미색 반광택지가 쓰였다. 한국어판에서, 대부분 지면에는 미색 무광택지가, 14장 ‘보기’(앞 설명 2쪽과 뒤 설명 1쪽 빼고 총 48쪽)에는 백색 반광택지가 쓰였다. 무광택지 ‘평활도’를 비교하면, 초판?2판?한국어판 순서로 거칠다. 반광택지 평활도는 대체로 비슷하다. 무광택지 ‘백색도’를 비교하면, 2판?한국어판?초판 순서로 흰색에 가깝다. 그런데 영어 초판은 17년간 공기와 햇빛에 노출되었으므로, 원래 종이 색을 추측해 비교하기는 어렵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에서, 13장 ‘보기’는 흑백으로 찍혔다. 다만 도판 영역을 제외한 지면에는 미묘한 배경(바니시)을 찍어, 마치 흰색 바탕 도판이 미색 종이에 붙은 효과를 낸다. 영어 2판과 한국어판에서 14장 ‘보기’는 아무 특수 효과 없이 컬러로 인쇄되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 ‘보기’에 실린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알 수 없다. 몇몇 보기는 복사본을 스캔한 듯하다. 2판 ‘보기’에 실린 사진은 그레이엄 부시(Graham Bush)가 촬영했고, 토번 오프셋 인쇄소에서 필름을 스캔해 썼다. 한국어판에도 같은 필름이 쓰였지만, 스캔과 ‘리터칭’은 브라질의 알렉스 마치니(Alex Mazzini)가 맡았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포르투갈어판에 쓰려고 그가 만든 디지털 파일을 로빈 킨로스가 스펙터 프레스에 전해 주었다.


* * * 


최성민은 내게 글을 의뢰하며, “해석이나 평론이 아니라 사실” 중심으로 써 달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실’이 객관적 현상이라면, 왜 그것을 굳이 내가 기술해야 할까? 어차피 주요 ‘사실’은 최성민 자신의 설명이나 그가 전해 준 자료에 의존하는데, 왜 그는 스스로 글을 쓰지 않으려는 것일까? 자기 전시에 대한 글을 자기 손으로 쓰기가 겸연쩍어서? 그래서 그저 내 이름을 ? 또는 내 목소리를, 내 몸뚱이를 ? 빌리려고? 이에 대해 최성민은, “나는 수사적 질문을 무척 좋아한다”고 답한다. 알다시피, 수사적 질문(question rhetorique)이란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라 동의를 구하려고 묻는 말이다.


최성민은 1995년 여름 <현대 타이포그래피> 번역을 시작했고, 이후 여러 차례 번역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상상의 한국어판 디자인도 스무 차례 이상 했다고 주장한다. 시험 삼아 그에게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해 본다. 그처럼 여러 번 글을 읽고 옮기고 만들었다면 내용을 전부 기억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무 지면이나 골라 질문을 뽑는다. 활자체 켄타우르의 디자이너를 묻자, 그는 “윌리엄 애디슨 드위긴스”라고 잘못 답한다. 정답은 브루스 로저스다. 몇몇 유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그는, 마침내 “어쩌면 세부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쪽이 거짓인지 확실치 않다. 


최성민은 “우선 키보드를 두드리는 재미에, 그리고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단순히 변환하는 재미에, 지면을 만들어 나가는 재미에, 또는 그저 무엇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그처럼 여러 차례 같은 책을 옮겼다고 한다.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이나 주장에서는 깊이 영향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역사 지식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다 마음에 걸렸는지, “아무튼 이 책은 오래 두고 읽을 만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왜 전시까지 하려 할까? “14년 동안 끌어 온 작업을 선선히 보내기 싫어서”란다. “책으로는 보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특히 책에 실린 도판은 전시라는 맥락에서 더 흥미롭게 논할 수 있다”고도 덧붙인다. 이에 대해서는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가 단지 전시를 할 수 있기에, 어쩌면 무슨 이유에서건 전시를 해야 하기에,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1992, 2004, 2009)’라는 전시 제목은 한국어판에 쓰인 도서 인용 관례를 연상시킨다. 영어판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책을 인용할 때에 발행 연도를 괄호로 묶지 않았다. 그런데 제목에 괄호를 쓰는 일은 조금 어색해 보인다. 글에서 전시를 언급하는 사람에게 양식적 문제를 안겨 줄 수 있다: “최성민은 개인전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1992, 2004, 2009)’(2009, 갤러리 팩토리)에서….” 전시 제목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숫자는 전시 연도인지 다른 연도인지, 등등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필자나 편집자, 나아가 독자를 골탕먹이려는 뜻일까?


전시하는 작품 가운데,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초판 13장 ‘보기’>는, 제목 그대로 영어 초판에 실린 (그러나 2판에서는 크게 바뀌고 한국어판으로도 옮기지 못한) 부분을 따로 떼어 번역, 출간한 책이다. 복원 또는 보존 작업?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과 달리, 이 책은 영어 초판 지면을 그대로 스캔한 다음 그 위에 번역문을 더한 형태를 띤다. 다시 말해, 옮긴 글이 원래 글을 대체하지 않고, 그 곁에 나란히 놓인다. 그러므로 최성민 번역의 충실도를 가늠하기에 좋은 자료가 된다.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 14장 ‘보기’> 연작은, 도판을 실은 한국어판 지면을 그대로 취해, 각 도판이 원본의 실제 크기가 되도록 확대한 작품이다. 일정한 지면(40×60센티미터)에서 주요 도판이 실제 크기로 중앙에 오도록 배치해, 우연히도 다른 요소들이 지면 밖으로 잘려 나가는 효과가 발생한다. 두 모서리에 그린 눈금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지만 (책에는 각 보기의 실제 크기가 적혀 있으므로), 지면 구성 원리를 얼마간 암시하는 노릇을 한다.


자세히 보면,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 14장 ‘보기’> 연작에 찍힌 도판들의 망점 크기와 밀도가 조금씩 다르다. 도판 크기를 원본 크기에 맞추려고 본래 지면을 각기 다른 비율로 확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런 효과를 주려고 작가가 일부러 망점 밀도를 달리한 것일까?


그런데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 14장 ‘보기’> 연작의 전시 계획, 즉 프린트를 제대로 걸지 않고 벽에 기대어 바닥에 세워 놓는다거나, 벽에는 오히려 각 프린트에 대한 설명만 붙인다는 계획을 들으니, 어쩌면 그 연작의 실제 작품은 프린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작품’은 액자에 끼운 프린트가 아니라 벽에 붙는 설명일까? 전시 도록에는 오로지 설명만 실린다. (그러므로 ‘도록’은 옳은 이름이 아니겠다.)


벽에 붙는 설명은, 각 프린트에 실린 도판을 기술하는 한편 (그 기술은 현대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도판에 찍힌 텍스트 요소를 번역한 글도 싣는다. 예컨대 우리는 에릭 길의 책 디자인을 볼 뿐만 아니라, 그가 쓴 (성차별적) 글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림’이 ‘글’이 되는 상황인데, 이는 타이포그래피라는 주제를 자연스래 반영하기도 하지만, 또한 번역에 대한 최성민의 집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번역을 정복이나 소유로 보는 것은 아닐까? 주어진 글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상투적 독서 태도의 직설적 실현?


그런데 그의 번역은 정확할까? <현대 타이포그래피>에 실린 보기에는 영어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표본도 있다. 다른 언어는 모르지만, 최소한 프랑스어 번역은 조금 엉터리다. 더 정확히 말해, 프랑스어 번역은 고르지 않다. 예컨대 몽테스키외나 루소 저작 번역은 무난하지만, 페르텔 번역은 엉성하다. 혹시 몇몇은 프랑스어 원문이 아니라 영어나 심지어 한국어로 옮겨 나온 글을 참조한 것이 아닐지?


다시 살피니, 몇몇 보기에서 최성민은 아예 번역을 포기하고 엉뚱한 글을 옮겼다. 그리고 슈테판 게오르게의 독일어 시는 인터넷 번역기로 옮긴 흔적이 뚜렷하다. 게오르게의 도저한 낭만성을 놀리려는 의도였을까? 도판이 품은 글의 뜻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면, 전문 번역가에게 의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노력 없이 몇몇 도판에서 그저 번역 포기를 선언해 버리는 것은, 실은 그 뜻을 알리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가? “작품에는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나,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길래 내가 웃었더니, 그는 조금도 우습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 * *


작품을 설명하는 최성민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왜 그는 무엇이 중요하다거나, 무엇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 태도는, 그가 밝힌 대로, “작가나 저자보다 디자이너나 편집자, 번역자 노릇이 더 좋다”는 태도와 관련이 있을까? 


그는 편집자가 ? 또는 심지어 디자이너가 ? 저자 몰래 글을 조금씩 고치는 ‘조용한 편집’ 역시 좋아한다고 밝힌다. 확인차 되묻자, 그는 “조용한 편집 행위가 아니라, 그 개념이 좋다”며 말을 바꾼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편집자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내 글을 자기 기준대로 ‘깔끔하게’ 고치겠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최성민은 이 글을 미리 보고 일정한 기준에 맞추어 “정리”하겠다고 고집한다. 조용하지도 않은 편집을 하겠다는 말이다. 글을 “정리”하는 그가, 내 문장 일부를 제게 유리하게 고치거나, 내가 품은 의문 일부에 답을 슬쩍 끼워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따지자, 최성민은 “당신이 아래한글에서 14포인트 바탕체로 쓴 글을 내가 인디자인에서 10포인트 윤고딕으로 다시 짜는 순간, 어차피 당신 글은 다 망가진다”고 답한다. 나는 이 단정에도 동의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글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서 12포인트 돋움체로 썼다. 


* * *





전시작가 이력

최성민


학력
2000-2002 미국 예일대학교 (Yale University) 그래픽 디자인과 석사
1990-199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 전공 학사

실무 및 교육 경력
2005-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조교수
2003-2005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 (Jan van Eyck Academie) 연구원
1996-2000 이미지드롬 디자이너

2인전 (슬기와 민)
2008 ‘슬기와 민, 김진혜 공팔공사공이-공팔공사일사’ (서울: 김진혜 갤러리)
2006 ‘슬기와 민, 팩토리 공육공사이일-공육공오일삼’ (서울: 갤러리 팩토리)

단체전 (슬기와 민)
2008 ‘From Mars’ (Tallinn: Estonia Academy of Arts)
2008 'Twelve Rooms' (서울: 어빙플레이스)
2008 '페스티벌 봄' (서울: 한국종합예술학교)
2007 ‘게임의 법칙’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2007 ‘Forms of Inquiry, Reading Room’ (London: AA School of Architecture)
2007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2007 (안양시 평촌일대)
2007 ‘디자인 쇼! 쇼! 쇼!: 오늘의 디자인’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2007 ‘SO.S’ (사루비아다방 / 더버스 기획, 서울: 더버스)
2006 ‘선택의 조건’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2006 ‘Graphic Design in the White Cube’ (Brno: Moravian Gallery)
2006 ‘Work from Mars’ (Brno: Moravian Gallery)
2006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두 도시 이야기’
2006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달라도 같아요’ 전국순회전
2006 ‘한글 다다’ (서울: dArt 갤러리)
2005 ‘De Best Verzorgde Boeken 2004’ (Amsterdam: Stedelijk Museum)
2005 ‘Traces/Temporary Type’ (London: St. Bride Library)
2005 ‘LSx: Leeds Unknown’ (Leeds University)
2005 ‘50 Books / 50 Covers of 2004’ (New York: AIGA National Design Center)
2005 ‘Parallel Life’ (Frankfurt am Main: Frankfurters Kunstverein)
200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2005 ‘IdN DesignEdge Conference & Expo 2005’ (Singapore: SUNTEC)
2004 ‘이건 연애편지가 아닙니다’ (서울: 마로니에미술관)

출판 경력
2009 로빈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스페터 프레스), 역서
2008 슬기와 민,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 (안그라픽스), 공저서
2008 노먼 포터,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스펙터 프레스), 역서
2008 <DT2> (홍디자인), 공저서
2004 얀 반 토른 외,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 (시공사), 공역서
2004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 (디자인하우스), 공저서
2002 앤서니 던, <헤르츠 이야기: 탈물질시대의 비평적 디자인> (시지락), 공역서
1999 <디자인 텍스트 01> (홍디자인), 공저서

수상 경력
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수여 '올해의 예술상' 시각예술 부문 (슬기와 민)
2005 미국 그래픽미술협회(AIGA) 수여 '50 Books / 50 Covers' (슬기와 민)
2004 네덜란드 그래픽 문화 재단 (Grafische Cultuurstichting) 수여 'Het Best Verzorgde Jaarverslag' (슬기와 민)
2004 네덜란드 그래픽 문화 재단 (Grafische Cultuurstichting) 수여 'De Best Verzorgde Boeken'
2002 미국 <ID Magazine> 수여 'Interactive Media Design Review' 학생 부문 동상
2002 미국 예일대학교 수여 'Alexey Brodovitch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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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개요

제목 :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1992, 2004, 2009)
전시작가 : 최성민
전시오프닝리셉션: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저녁 5시
전시일정 : 2009년 3월 13일 (금) - 4월 5일 (일)
전시시간 : 화-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매주 월요일 휴관)




Overview
Title : Kinross, Modern Typography (1992, 2004, 2009)
Artist : Choi Seong-min
Opening Reception : 5:00 p.m., Mar 13, 2009
Duration : Mar 13, 2009 - April 5
Hours : 11:00 a.m. - 7:00 p.m. (Closed on every Monday)




전시문의
갤러리 팩토리
전화 : 02-733-4883
이메일 : master@factory483.org
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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