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웃음 Empty Smiles
2011.3.25_4.17

뭇웃음
Empty Smiles 
by 권순영 

 

 

 

 

 

전시개요
권순영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폭력과 고통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긴 최근 작품 십 여점이 전시된다. 권순영은 자전적인 경험들을 작품의 주제로 활용해왔으나, 근작들에서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상상력을 통해 진화되고 확장되어 꿈 속과 같은 새로운 판타지로 구현되었다. 그러나 이 꿈은 악몽과도 같이 기괴하고 파괴적이다. 
권순영의 작품 속에는 미키마우스나 캔디와 같은 만화 속 캐릭터들이 작가 스스로 창조해 낸 수많은 캐릭터들과 더불어 등장하지만, 이 캐릭터들은 만화 속과는 달리 고문과 같은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당하는 잔혹한 세계 속에 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의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년기의 순진한 환상을 반영하는 듯 흰 눈이 내리거나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볼들이 떠있다. 이 같은 장치는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아득한 꿈 속과 같은 상태를 만들고, 유리알 속 풍경처럼 환상적인 효과를 유발시킨다. 
전시 제목인 ‘뭇웃음’이란 여러 사람을 향하여 덧없이 웃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한결 같이 이 뭇웃음을 웃고 있다. 전시제목과 같은 이름의 <뭇웃음>이라는 작품에서는 작가가 상상한 여러 가지 캐릭터들이 나열되며 모두 뭇웃음을 짓고 있다. 예리한 아픔이 내재되어 있는 이 미소에는 고통에 대한 작가의 심리적 잔상과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에 의하면, 이 작품은 수많은 연약한 희생양들을 애도하는 기념비와도 같은 것이다.

 

전시 서문 
- 이은주 (독립기획자, 미술사)
권순영은 관훈 갤러리에서의 지난 개인전에서 이야기책에 등장하는 삽화의 형식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했다. 기억에서 건져진 무거운 일화들을 만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들과 드로잉을 이용하여 가볍게 전도시킨 작업들이었다. 경쾌한 어법으로 실랄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역설의 방식은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미학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근작에서 권순영은 단편적 이야기의 삽화 같은 방식에서 좀 더 회화적인 방향으로 이행하였다. 작품 속 이미지는 일화들의 전달을 위한 부가적 장치가 아닌 자기충족적 리얼리티를 갖게 되었다. 첫 개인전 이후 지난 4년간의 작가적 성숙을 보여주는 환영할만한 발전이다. 그의 근작들 역시 기억 속 개별적인 사건들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사건의 특수하고 개인적인 지점을 벗어나서 폭력과 공포라는 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실체를 다루고 있다. 기억의 파편들은 자동기술적 드로잉의 원리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또 다른 상상의 이야기로 진화되고 증폭되어, 특정한 기승전결 없이 상처와 고통이라는 정서적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기억과 상상이 뒤섞여 세포분열 하듯 증식된 이 시각적 콘텍스트를 일컬어 하나의 정서적 덩어리, 혹은 심리적 유기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권순영의 근작들에서도 만화적인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들은 이전 작품에서와 달리 특정 인물을 표상하기 보다는 제의적 의식에 참여하는 가면 같은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순정만화에 나올듯한 여린 소녀들이나 잘 알려진 캔디, 미키마우스를 닮은 주인공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만화가 일반적으로 지시하는 천진한 해피엔딩의 세계 속에 놓여있지 않으며, 마치 보슈의 그림 속 최후의 심판 장면처럼 신체가 절단되거나 해체되는 끔찍한 신체적 고통을 받고 있다. 쏟아진 내장, 각목에 찔린 몸, 벗겨진 피부와 같은 이미지는 고통의 상징으로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당하고 있는 잔인하고 파괴적인 사건은 행복해야할 동화 나라에 느닷없이 끼어든 희생 제의처럼 부조리하고 가혹하다. <눈>과 같은 작품에서도 어여쁜 순정만화의 주인공 소녀들은 다리가 잘려있거나 고문을 당하고 있다. 역설적 상황을 더욱 강조하는 것은 그림 속 주인공들의 표정이다. 기형이거나 훼손된 신체를 가진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그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비참함을 웃음으로 덧입힌 듯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다. 사건의 본성과 유리된 이러한 표정으로 인해 이들은 떠도는 유령 같이 현실적 힘을 잃은 채 무기력한 느낌을 준다. 

주목할 점은 권순영의 작품 내용이 고문 현장과 같이 폭력적인 장면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종종 크리스마스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장식용 볼과 같은 순수한 유년기의 환상을 투사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아들의 성탄>이나 <가족>에서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 이미지는 그림 속 캐릭터들의 훼손된 신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심리적 고통들과 오버랩 되어 기이한 판타지를 만든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성탄절의 평화로운 아름다움은 잔혹함이 주는 감각적 충격의 파장을 조용히 흡수하면서, 파괴적 장면을 마치 꿈처럼 몽환적인 것으로 만든다. 비천함(abjectness)의 미학 자체를 감각적으로 탐닉하는 것이 작품의 목적이 아님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것은 때묻지 않은 유년기의 환상과 뒤틀린 현실의 공존에서 발현되는 세계로서, 동화나라와 현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기묘한 연옥의 지대이다. 이 세계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흡사 성냥팔이 소녀가 창 안을 바라보는 것 같은 아득한 거리감이 견지되는 것은 흥미롭다. 작품 안 세계에는 유리구슬 안의 공간처럼 닿을 수 없는 엷은 장막이 있는 듯하며, 이 때문에 어쩐지 슬프게 느껴진다. 감각을 날카롭게 건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곧 사라질 물거품처럼 허무하고 가벼운 느낌을 안겨주는 것도 이러한 장치 때문이다.

이율배반적인 세계의 충돌과 결합, 이로부터 진화되는 새로운 판타지는 권순영의 작품을 형성하는 요체이다. 축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잔인한 현실, 그 안에 여전히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으로 남겨진 유년기의 환상, 잔혹한 감각적 충격들을 완충시키는 아득함,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판타지야말로 권순영의 근작에 새롭게 성취된 개성적인 특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뭇웃음’은 여러 사람을 향하여 덧없이 웃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제목의 작품 <뭇웃음>은 권순영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녀, 아이와 같이 약한 존재들을 위한 기념비나 무덤과 같은 것으로, 이름 없는 수많은 희생양들을 기리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특정한 상황 설정 없이 신문에서 읽은 사건과 기억, 상상력이 만나서 창조된 캐릭터들 하나 하나의 표정이 곧 주제가 되고 있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이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덧없고 헛헛한 웃음을 짓고 있다. 예리한 아픔이 내재되어 있는 이들의 옅은 미소는 작가가 그림 속 존재들을 창조하면서 공유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통에 대한 심리적 잔상이 투영된 것이다. 배경의 별빛과 둥근 볼들은 정령처럼 떠 있는 이들의 웃음을 좀 더 아름답게, 애처롭게 만들어준다. 기억과 상상이 만나 형성된 이 캐릭터들의 세계를 통해서 연약한 존재들의 공포, 고립과 고통이 보편적인 인간감정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뭇웃음’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작가노트
- 권순영 
허약한 사람이었던 나는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더욱 커져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 나는 각인된 장소, 장면, 사람, 냄새, 촉감, 소리 등 다양한 형태의 기억들을 보관해 두는 서랍장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깊은 인상을 심어준 어느 한 대목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며 은밀한 유희를 즐기기도 한다. 저마다의 기억들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매번 새로운 감정들을 유발 시킨다. 내게 채집되어진 기억들은 서랍장 안에서 또 다른 기억들과 엉키고 충돌하며 기형적인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다가 나조차도 알 수없는 생경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나의 취미라 할 수 있는 소일거리들의 대부분은 내가 만들어 놓은 이 서랍장 안에서 벌어진다. 전쟁과 살육, 축제와 처형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하며, 이름 없는 소녀들에게 폭행을 가하다가도 금세 그들의 뜯겨져나간 살점을 꿰매어 주기도 한다. 
그러한 전장에서 여전히 울고 있는 어느 한 소녀를 본다. 유린 되고 방치된 그 소녀에게 나는 갑옷을 입혀주고 서슬 퍼런 칼날을 쥐어준다. 모든 자유를 그녀에게 허락한다.

그들을 죽여도 좋아. 
그 시체 더미에 오줌을 갈겨도 좋아. 
네가 행하는 어떠한 만행이라도 
난 너에게 찬사를 보낼게. 
사방으로 튄 붉은 핏방울들은 
곧 영롱한 진주로 다시 빛나게 될 거야. 
운명이 잔인한 심술을 부려 
네 어여쁜 얼굴을 
쇠몽둥이로 내려친다 하여도 
난 너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해줄게.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름 모를 소녀들아 
힘없이 스러져간 가녀린 떨림 들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별빛으로 다시 태어나렴. 
내가 달이 되어 너의 노래를 가장 먼저 들어 줄 테니.

그 소녀는 나의 서랍장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분노하고 때론 견딜 수 없어 두려움에 떨다가 한동안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그리곤 참으로 오랜만에 나타나 그 순진한 얼굴로 나의 곁에서 다시 웃고 있다. 아픈 기억의 더미에서 태어난 소녀는 대부분의 사생아들이 강탈당한, 용기 있는 심장을 여전히 간직 하고 있었다.



 

-
전시개요 

전시제목 : 뭇웃음
전시작가 : 권순영
전시일정 : 2011년 3월 25일 - 4월 17일 
전시시간 : 화-일 오전11시 - 오후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문의
갤러리 팩토리
전화 : 02-733-4883
이메일 : master@factory483.org
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Overview
Title : Empty Smiles 
Artist : Soonyoung Kwon 
Duration : Mar. 25, 2011 - Apr. 17, 2011
Opening Reception : Mar. 25, 2011, 6pm. 
Hours: 11:00 a.m. - 6:00 p.m. (Closed on every Monday)

 

Inquiry
Gallery Factory
Tel : 02-733-4833
E-mail : master@factory483.org
Website : www.factory483.org

 

 

080_2_b.jpg

 

080_3_b.jpg

 

080_4_b.jpg

 

- 부대 프로그램

관련글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