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ft exhibition 2012 Luft exhibition 2012
2012.8.24_9.15

Luft exhibition 2012 
by Satoko Takeshima 사토코 타케시마
Nami Makishi 나미 마키시 

 

 

 

 

 

전시개요
갤러리팩토리의 8월-9월 전시는 일본의 디자인 스튜디오 루프트워크(Luftworks)의 전시로 8월 24일부터 9월 15일까지 진행된다. 
루프트워크는 2005년 설립된 나미 마키시와 사토코 타케시마의 공동 사무소로, 두 작가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조형예술을 넘나드는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는 1, 2층으로 나뉘어 상반된 성향을 가진 두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디자이너로서 물질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마키시와 타케시마는 물질 자체와 물질의 디테일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작품으로 제시하는데, 이것은 루프트가 앞으로 해야 할 것과 나아갈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과 같다.
우선 1층에는 사토코 타케시마의 ‘부분들(Parts Project)’이 전시된다. 벽면에 솟아오른 용도와 쓰임을 알 수 없는 오브제들은 그 기능보다 이미지의 ‘인상’에 집중하는 작가의 훈련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활동해온 작가는 디자인의 의미에 대해 자문해오며 디자인의 중요한 ‘쓸모’는 매력적인 ‘인상’이라 결론 내린다. 무에서 온전한 것을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창조하기 위해 기술과 비용, 제작 공정 등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이보다 우선하는 것은 특정 형상에 대한 ‘인상’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인상’은 때때로 애매하게 혼돈을 주기 때문에 이에 집중하기 위한 훈련으로서 물질의 디테일인 부분의 형상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눈을 감으면 나는 분명한 형태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내가 느끼는 것들을 재구성하기 위한 훈련이다. - Satoko Takeshima

한편, 2층에서는 팩토리의 에디션으로 첫 선을 보이는 나미 마키시의 나왕 서랍장 (LAUAN DRAWER)이 소개된다. 팩토리 에디션은 아티스트와 팩토리의 고유한 콜라보 작업으로 가구와 사진, 디자인 제품 등을 다루는 팩토리의 새로운 프로젝트이다. 마키시의 2012년 작업인 나왕 서랍장은 특유의 정교함과 소박함을 기반으로 한 조형미를 드러내며,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단정한 삶의 태도를 지향한다.

작가에 대해
사토코 타케시마 SATOKO TAKESHIMA는 인테리어 제품 디자이너로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무사시노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2년간 이데 (IDEE)의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2011년부터 현재까지 가구 디자이너로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예술작업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나미 마키시 NAMI MAKISHI 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무사시노 예술 학교와 국립 베를린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에서 작업하였고 현재는 도쿄에서 디자이너로 작업하고 있다. 2012년 오키나와에서 제품을 개발하며 디앤데파트먼트 (D&DEPARTMENT)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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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S PROJECT
by Satoko Takeshima

이 프로젝트의 발단은 쓸모도 기능도 없지만
마음이 끌리는 인상을 확실하게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트레이닝이었다.
디자인 일을 하다보면 디자이너의 역할이나 존재의미, 디자인 자체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조형을 실체화하고 의장하는 것이 디자인의 정의라
고 한다면, 그 디자인은 누군가의 쓸모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쓸모에는 기능 뿐 아니라, 필요하든 필요치 않든 매력적인 형태나 매력
적인 인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디자이너는 어떤 물건을 만들 때,
팀워크 안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에게는) 그 팀에서 어떤 인상을 어떤 형태로 뽑아내느냐 하는
기술이 가장 우선되는 역할이며,
비용이나 제작방법, 판매방법을 이해하고 균형을 잡는 것은 물건의 쓸모
를 완성하기 위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균형을 잡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상’이라는 축이 자신 안에
명확하게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누군가의 쓸모에 따른 것이라고는 해도, 가끔 어떤 인상을 보고 있는지
가 애매할 때가 있다.
제일 우선되는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애매하
면 다른 모든 것 역시 균형을 잡을 수 없고, 따라서 팀이 성립되지 않는 다.
애매한 것을 제대로 보는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상, 이라는 것에 대해.
이미지는 오감으로 직접 들어온다.
이미지가 오감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다양하며 사람마다 다르다.
직접 울려오는 음악이나 조금씩 모여 도착지에 이르는 듯한 글 .
혹은 그 반대의 표현이 어울리는 음악이나 글도 있다.
물건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사용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문득 공간에 떠오르는 잔상처럼 오감으로 연결된다.
오직 거기에만 ‘존재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개인의 선호인지, 그런 인상에 끌리곤 한다.

자세히 보면 주변에 있는 물건은 의외로 복잡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일상에 녹아들어 눈길도 끌지 않는, 오직 거기에 존재할 뿐인 ,
인상.
명쾌하지도 않고, 덧없고, 극히 자잘한 가능성이라는
기능과 사고의 균형을 오직 끌리는 인상만으로 쫓아본다.
관점을 바꾸면 이것들 역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쓸모에 따른
것이 아니기에 보는 사람에 의해 그 기능의 폭이 달라진다.
형태라는 것이 보이는 그대로의 물체이기도 하고,
형상을 넘어 주변 공간의 인상을 파악하는 틀이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인상을 오감으로 엿보는
안경 같은 것이었으면 한다.
느낄 수 있는 한 몇 겹으로든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제한 없는 가능성을 끌어안고,
그저 존재하는 것을 다양한 부분(parts)에서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다.


단지 존재한다. 는 것에 대하여.
목초는 존재한다 할 것도 없이 아득하게 보인다.
핵심이 되는 그’것’을 불현듯 볼 수 있게 되듯이.
무의식이라 할 수 있나 하면 그렇지 않게 의도하여 모양을 바꿔 ,
깨달았을 땐 노력이 다해져 있다.
이쪽의 의도가 비쳐 보이는 듯하여 뭐라 말도 못한 채 조용해 질 뿐이다.
기나긴 시간을 거쳐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존재한다는 것은 인공물
같이도 느껴진다.
사물(mono)이나 건물도 때때로 공간이라는 간격과 함께 느껴지는 나름
의 순간이 있다.
맑은 목초보다 때로는 깊이 침묵해 버린다.
회화의 그림 깊이 무한의 정숙과 허무, 끝이 없는 공간이 보일 때 ,
오감은 한층 허공을 떠올라
어딘가 기댈 곳을 찾게 된다.
단지 존재한다는 것은 고독하며 미덥다


알기 힘든 것. 에 대하여.
보면 용도를 상상할 수 있는 것에는 안심이 된다.
알기 쉽다는 건 좋은 것도 아니고
모두 좋은 인상이 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알기 힘든 사물(mono)이 있다면 이해하려는 시점에서
좋은 인상이 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한다.
알기 쉽다거나 알기 힘들다는 것은
나중에 따라오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쓸모가 있겠구나, 라든가 아름답구나, 라는 인상이 먼저 떠오르고
(그리고는 무엇일까, 이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나 놀이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예술(art)에 가구가 자주 쓰이는 건
이런 연유에서 일까.
개념을 넘어서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무언가 끝까지 다 볼 수 없는 것과 만들려는 것에 대하여.
문제 자체가 혼돈스러워서, 끝까지 다 볼 수 없는 상태일 때 ,
무심코 억지로 진척시키려 한다. 하지만 머리로 알려 하면 무언가
둔중하게 이해하게 된다.
잡다하게 종이나 나무조각이 수면 위에 정체되어 있는 것을
힘껏 한 방향으로 밀어내어 드디어 물 밑바닥이 보이는 것 같은 억지스
러움이 있다.
가끔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보다도 빨리 지향하는 시점을 이해할 수 있
을 때가 있다. 물의 흐름을 쫓아 날아가는 새처럼 쫓아가는 선두부터 물
이 빠져서 원래의 길이 멀리까지 내다 보이는 듯한 이치.
이런 건 갑작스럽기 보다는 먼 길을 돌아와서 반복 된 후에 조우하는 경
우가 많다.
무언가를 만들 때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된다.
그 둔탁한 과정은 언젠가 바뀌지만 먼 길을 돌아온 후에 향하는 곳은
이후에 기댈 곳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것들이 언젠가 변할 때 그 과정을 돌이켜 볼 수 있도록 기록으로써
벽에 나열해 보았다.


틀과 같은. 에 대하여.
틀. 그것 없이는 동일한 형상을 유지 못하는 부드러운 것을
둘러싸는 2차원적인 이미지다.
틀을 해석하거나 사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틀 자체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로 3차원의 무한한 것을 잘라내서 들여다
보듯이 안경의 형태보다는 그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본다. 는 듯한 의미.
그러나 어떠한 안경을 써도, 어떤 경치는 보일 리가 없다 .
그 중에서도 조용하고 아득한 경치에는 전용 안경이 필요하다.
그런 (틀 같은) 것을 때로 시중에서 발견하게 되면
무심코 들여다 보게 된다.
무엇이 존재하는지. 저편과 이쪽 둘다 보이는 듯 하다.


시간. 에 대하여.
2차원의 평평하게 발라진 색에 빨려 들어갈 듯 할 때가 있다 .
왠지 입체에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평면이 더 시간의 축이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과거도 미래도 평면 저 깊숙이 지금도 존재하는 듯.
입체에는 동시에 현존하는 듯한 시간의 깊이 보다
과거의 기억이 느껴진다.
이들은 평면은 아니지만
입체가 아닌 듯이 생각된다.
어떤 방향에서 본 인상을 형태로 만드는 일이 많기 때문에
강한 인상은 평면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색을 칠한 면을 평면 부분만으로 한정시킨 건 그 부분을 평면으로 만들
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색 속에서 시간은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 걸까.


근소한 차이. 에 대하여.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한 형상에서 갑자기 인상을 남기는 모양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
밀리그램 단위로 똑같이 제작해도 왠지 다른 것이 완성된다.
모양은 형상으로만 만들 수가 없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사물 (Mono)이든 무엇에든 불가결하다
고 다시금 생각한다.
누구를 위해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는 묻지 않은 채, 자신에게는 불가결
한 것이기에 모자라는 부분이랄까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
될 수 있다면 기분을 해칠 일이 없는 것이 보인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경계선. 에 대하여.
무언가를 만들 때 좋고 나쁘다는 기준이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방정식도 없을뿐더러 매뉴얼도 없다. 감, 이라는 것과도
조금 다르다.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경계선과도 같은
선(line)이 있다.
뛰어 넘지 말고 그곳을 넘으면 무조건 되돌아온다.
그렇게 가다 돌아오다 하는 식으로 지그시 경계선이 사라져 어떤 사물
(mono)이 완성되어 있다.
그런 선(line)이라고나 해야 할지,
혹은.
뿌옇게 보여지던 영상에 딱 초점이 맞듯이 정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 어떻다는 것도 없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도 경계선이 나타나
지 않은 채, 초점도 흐트러져 있지 않다면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뿐이다.


주위에 존재한다는 것. 에 대하여.
느낀다는 것은 공기처럼 주변에 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시야가 열리듯 보이는 방식.
그런 기분을 언제나 찾고 있다.
무엇보다도 흥미롭다.


장소, 에 대해.
동네에 잔뜩 쌓여있는 박스는 왜인지 세로의 느낌이 약하다.
고층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 생각지도 않는 듯.
어쩐지 가로방향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산길은 자연스럽게 전체 방향에서 보게 된다.
오감이 올곧게 열리는 듯이.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동네는 전체 방향에서 바라보기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치게 만드는 것인지도.
동네 안에도 가끔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특정한 장소가 있다 .
자연 안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덜 무서워 의외로 머리가 맑아지곤 한다.
물건을 만들 때는 그러한 장소에서 생각을 심화시켜 전체 방향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


생각나는 것, 에 대해.
생각나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보고 느낀 것이 자신 안에서 여과되었을 때 ,
갑자기 영상이 당도하는 느낌.
오로지 그 영상들만이 종횡무진으로 흘러간다.
잡아보고 싶지만 어쩐 일인지 너무 빨라 잊어버린다.
생각난다는 것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끝난다.
하지만, 나중에 아무리 곱씹어도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희망이나 의문을 한번 더 반대로 응시해보고
영상에 이르게 될 때.
검토하고 생각했던 것을 잊을 정도로 철저하게 고민하면
번뜻 생각난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런 상황은 실제로 근거가 된다.


낌새, 에 대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모든 일이 어떻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와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때가 있다 .
그런 낌새는 늘상 있는 일이라고 수동적으로 느끼기 십상이지만,
실은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일을 주변의 낌새로 표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느때라면 상식적으로 하지 않을 일을 문득 행동하고 있을 때.
두렵게도 그런 사태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한 자신도 있다. 그런 것을 낌새라고 간주하고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낌새를 채면 경보음을 들은 것처럼 신중해진다. 우선 소리 .
자신이 내고 있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본다.
리드미컬하지 않고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경우에는
살짝 움직여본다. 높은 연비로 최단거리로.
그렇게 하면 왠지 점점 평상시의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준비하는 것, 에 대해.
소리는 아무도 준비하고 듣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이미 마음
에 직접 들려온다.
아, 내가 좋아하는 소리, 라고 언제든 기억과 시간 속에 잠길 수 있다 .
왜 예술에 있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까.
이해를 하든 말든 자연스럽게 소리처럼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가끔 현실에 있는 부정적인 사실을 눈앞에 들이미는 예술을 본다.
생리적으로는 예쁜 것보다 안 좋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유는 몰라도 직접적으로.
여러 감정과 감각이 존재한다.
자외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때문일까.
누군가가 보고 있는 풍경을 똑같이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본 적도 없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상상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면 좋겠다.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 에 대해.
돌고 돌아 처음 생각이 좋았다, 는 것은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방정식 같은 것이 아니며,
그 정도로 처음 생각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도 마지막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아니 어쩌면 철저하게 생각하지조차 않는다.
나 같은 경우,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는
것 같은 작업을 하지 않으면 망각하고 만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야 할 동기가 있는가의 문제일까.
처음에 의미는 잘 알 수 없지만 뭔가 강렬한 파편을 움켜쥐었을 때.
거기부터 돌고 돈다 해도 전부 조리에 맞도록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가 눈앞에 보였을 때
그저 존재한다, 는 것이 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것, 에 대해.
여러가지 물건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보면,
그 물건 자체보다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문의
갤러리 팩토리
전화 : 02-733-4883
이메일 : master@factory483.org
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Overview
Title : Luft exhibition 2012 
Duration : Aug. 24, 2012 - Sep. 15, 2012
Artist : Nami Makishi, Satoko Takeshima 
Opening Reception :Aug. 24, 2012, Fri. 6:00pm - 8:00pm 
Hours : Tue.- Sun. 11:00 a.m. - 6: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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