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06.5.19_6.11

2006 팩토리 기획 '현대 여성 미술의 새로운 표상 - 新女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by 김연태 

 

 


 

2006년 5월 19일부터 6월 11일까지 갤러리 팩토리에서는 김연태의 개인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것>이 열린다. 이번 개인전은 팩토리 기획시리즈 '현대 여성 미술의 새로운 표상 - 新女性'의 두번째 전시로서, 독립 큐레이터 이순령과 작가 김연태와의 오랜 기간의 긴밀하고 진지한 대화의 흔적이 전시 곳곳에 배어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획"전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드로잉을 근간으로 한 회화나 입체, 설치를 선보여 왔다. 작업 초기부터 꾸준히 선보여온 아크릴, 잉크펜을 사용한 세필의 드로잉은 작가의 개인적인 일상의 투영이자 작가 특유의 상상력에 의한 과감한 생략을 통해 보여주는 일종의 시각적인 시<時)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작가 김연태는 자신의 작업을 '상황과 장면의 기억 속에서 꿈을 꾸며 색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미술의 소재 및 주제에 있어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 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게 된 오늘날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여성을 중심적인 위치에 놓이게 한다. 작가 김연태는 그만의 예민한 감성으로 그 징후를 드로잉 작업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태의 작업은 팩토리의 2006년 기획시리즈 '현대 여성 미술의 새로운 표상 - 新女性'의 기획의도를 가장 명료하게 반영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 전시가 설치작품과 드로잉을 병렬 배치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번 팩토리에서의 개인전은 방식이나 양의 드로잉과 비교적 규모가 큰 회화작품이 주를 이루어 보여지게 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글_이순령( 독립 큐레이터 )

삶은 모호한 것 투성이이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쉽사리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세월의 켜가 쌓이면서 익숙해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늘 낯선 상황에 서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김연태 의 작업에 다가가는 과정 역시 그러했다. 작업실에서 처음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나는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섣부른 접근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한 그 세계가 이내 궁금해졌다. 그리곤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조금씩 다가서서 조심스레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지금에도 여전히 그녀의 작품들과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이 글은 어떤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그 감추어진 내밀한 속 풍경을 엿보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였다. 

회화나 입체, 설치에 이르기까지 김연태 의 작업은 드로잉이 근간이 된다. 아크릴, 잉크펜을 사용하여 세필로 찰나의 인상을 포착하는 드로잉은 순발력이 뛰어난 그의 성격에 잘 맞는 매체이다. 초기부터 꾸준히 해온 드로잉 작업은 그녀 개인적으로는 일상의 투영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만났는지 무엇을 읽고 느꼈는지 그 단상에 대한 흔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배제된 채 화면은 몇 개의 선으로 요약된다. 상대적으로 터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회화 작품조차 절제되고 그래서 때로는 비워진 듯 충만한 상태로 제시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드로잉의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에 의한 과감한 생략은 지루하고 산만한 세부를 잘라내고, 우리의 관심을 곧바로 사물의 핵심적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글에 비유하자면 장황한 미사여구를 곁들인 산문이 아닌, 암시적 단서를 던져주고 읽는 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시 ( 詩 ) 에 가깝다. 최소한의 언어로 가볍고 경쾌하게 대상을 요약하는 김연태 의 드로잉은 그중에서도 하이쿠를 연상시킨다. 시이지만 이미지적 성향이 강한 하이쿠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에 대한 인상을 간결한 시구로 표현한다. 이와 유사하게 그의 드로잉 작업은 슬쩍 무심한 듯 그은 몇 개의 선으로 대상을 압축하고 있다. 그리고 가볍고 단순해질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경계를 알 수 없게 뒤섞여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 사람들의 관심은 민중, 역사 , 정치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대 담론에서부터 개인, 일상, 욕망 등의 사적인 가치로 옮겨가게 되었다.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술에 있어서 이러한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여성을 중심적인 위치에 놓이게 한다. 김연태 는 그만의 예민한 감성으로 그 징후를 드로잉 작업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자신의 작업을 ‘상황과 장면의 기억 속에서 꿈을 꾸며 색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주제를 찾아 헤맨 적이 없다. 언제나 주제가 나를 찾아 왔을 뿐이다'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 (Gabriel Jose Garcia Marquez) 의 말을 인용한다. 작업노트 한 켠에 적혀 있는 이 문장은 작업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짐작케 하는 단서가 된다.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느낌과 감정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데서 작업은 출발한다. 이렇듯 깨어있는 명료한 의식이 준비되어 있다면 그것은 예기치 못하게 스치는 작은 미동마저 포착할 수 있는 발화점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대상에 내재한 특질들을 포착해내는 명민한 능력의 소유자인 작가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그 느낌이란 우연히 접하게 된 어떤 것이 서서히 내적 사고를 점령해가고 결국 그것에게만 온 신경과 마음이 집중되는 것을 말한다. 김연태 는 이렇듯 집중된 감정이나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의 침묵과 그 진실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소한 일상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개인적 감성과 기억을 더듬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친절하거나 투명하지 않다. 드로잉 안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친근한 사물이 불안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화면 속에서 발견되는 형태들은 그것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애매한 상태로 제시되기 때문에 우리는 당황스런 상태에 놓이게 된다. 김연태 의 작업을 읽는 묘미는 이러한 익숙함과 낯설음의 공존에 있다. 일반적으로 비평이란 언어를 통해 작품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밝혀내거나 형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일반적 추측은 미끄러지고 작품의 의미를 관통하려는 노력은 공허함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독자를 애매모호한 상태에 둠으로써 불확실한 감정을 촉발하는 것을 프로이트 (Sigmund Freud) 는 ‘두려운 낯설음 (uncanny) '이라고 정의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두려운 낯설음' 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김연태 는 일상의 어떤 대상에 감추어진 시각적 가능성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낸다. 구체적인 형상에서 출발하되 사물을 물질보다는 사건으로서 상황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을 묘사함에 있어서는 어느 순간 우연히 눈에 들어온 말의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낯설고 서늘한 감정과 그 예기치 않은 상황이 주제가 된다. 말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수차례 전이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에는 더 이상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물의 외연적 실체는 휘발되고, 그것과 닮았지만 그것이 아닌 새로운 문맥이 드러난다 . 즉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모방이란 의무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해석의 문이 열린다. 작가는 완벽하게 이해될 수 있고 100% 소통가능한 현실로부터 의미를 면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주어진 개념의 틀에 갇혀지는 비평의 언어적 판단과 단정을 중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의 작품에는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생명의 에너지가 보이지 않지만 탐지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크고 요란한 동작보다는 섬세하고 작은 변화 속에 내재된 움직임이다. 우리는 의외로 작은 변화에 더 민감하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을 김연태 의 회화는 가시화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것에 내재된 비가시적인 형상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가늘고 섬세한 선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솜털처럼 예민한 실선들이 구두나 가방처럼 생명이 없는 사물의 표면을 감싸고 있거나, 탯줄과도 같은 생명선이 서로 관계없는 사물들을 연결하거나, 혹은 나무줄기처럼 뻗어가며 뿌리내리려는 사유의 이미지를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에게 선은 더듬이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선을 긋는 것은 대상을 알아가는 가장 솔직한 방법인 동시에 자신에게로 향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처럼 김 연태 의 드로잉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선 상에 서있다. 이러한 태도에는 작가의 은밀한 욕망의 투사가 개입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내면화하는 응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캉 (Jacques Lacan ) 의 욕망 이론에 의하면 응시란 타자의 영역에서 나에 의해 상상되는 응시를 말한다. 외부에 놓인 사물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하나의 시각적 경험인 응시는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자기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라진 ‘결여'의 형태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김연태 의 작업과 맞닿아 있다. 생략되고 숨겨지는 단계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재현의 과정에는 시각을 통해 어떤 외적 실체로부터 진정한 자아를 도출해내려는 욕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 이는 타자에 대한 관심이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기반영성의 미학이 된다” 는 작가의 언급과 일치한다. 자기애적 성향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 사실 우리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자기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세계에 관여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김연태 에게 있어서 작업이란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모든 대상과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해가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내밀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끊임없이 새로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은 눈을 뜨고는 있지만 일상의 삶 속에 아직 잠들어 있는 감성들을 일깨우고, 책임과 의무로 가득한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자아를 되찾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길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풍경이지만 , 길 위를 걷는 사람에게는 통로이다 ." 앞으로 김연태 의 작품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지에 대한 예측은 지금처럼 모호한 채로 남겨두고 싶다. 그러나 그는 길 위에 서있고 좀처럼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심할 수 있고 기다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전시는 그 예감에 대한 믿음이다.

 


작가 약력

교육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학과 졸업
뉴욕대학교 미술대학 졸

개인전
2000 갤러리 공모 기획, 조흥갤러리 서울 
2002 Wall Work-Works, 아티누스 갤러리, 서울
2004 끊임없이 그래서, 거쳐가는, 피쉬갤러리, 서울

단체전
2000 드로잉 릴레이,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1 현대미술의 지상도, 광화문 갤러리, 서울 
2002 한국 캐나다 - 대륙을 향한 자유 발언, Pendlerm 갤러리, 몬트리올, 캐나다
2002 Generation III, A.I.R. 갤러리, 뉴욕
2002 Destination : The World, Parsons School, 파리, 프랑스
2003 각분각거, 인재아트센터, 광주
2004 회화전, 청주예술의전당, 청주 
2005 Dive Into Life, 신세계갤러리
2005 인천환경미술 프로젝트 : 문예진흥원, 기획공간 산방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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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개요
오프닝리셉션 : 2006년 5월 19일 금요일 오후6시 
전시제목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06년 기획시리즈 
'현대여성 미술의 새로운 표상 - 新女性' 김연태 개인전
전시기간 : 2006년 5월 19일 - 6월 11일
관람시간 : 화 - 일 오전11시 - 오후6시 (매주 월요일 휴관)





Overview
Title : Visible and Invisible
Opening Reception : 6:00 p.m., May 19, 2006
Duration : May 19 - June 11, 2006
Hours : 11:00 a.m. - 6:00 p.m. (Closed on every Mo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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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2-733-4883
이메일 : master@factory483.org
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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