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쇼 The drawing Show
2007.4.27_5.20

드로잉 쇼
- The drawing Show

 

 

 

 

드로잉은 가장 기초적인 선 작업으로 출발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은 무한하다. 
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분야는 디자인, 건축, 영상, 설치, 회화 등 다양성을 띤다. 
이 전시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인 ‘선’을 근간으로 하여 가장 완성도 있는 작업을 그 형식적으로도 물론이며, 그 결과에서 초래되는 다양한 활동(activities) 영역까지도 아우르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개념의 드로잉을 다양하게 선보이게 된다.

 

 

 

전시서문
글_김인선

나무는 뿌리에서 나무기둥을 타고 여러 갈레로 뻗은 가지를 지나 수많은 잔가지에서 돋아난 푸른 이파리들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생긴 ‘사물’을 나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긴 사물은 ‘나무같이 생긴’ 혹은 ‘나무를 본뜬’ 그 무엇이 된다. 나무가 되기 위한 조건은 너무나도 넓기 때문이다. 뿌리의 역할은 땅 속에서의 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 양분은 나무의 성장에 알맞은 양분이어야 하며 나무속을 맴도는 양분은 나무의 둥치와, 가지와 잎을 성장하게 해야 한다. 나뭇잎은 태양을 통해 광합성 작용이 이루어지며 이로 인해 산소가 만들어지며 이 산소는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다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기능을 소모하며 죽어간 생명체들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양분이 된다. 이것이 나무의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이다.

드로잉 전시를 기획하면서 작가를 결정하고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고민스러운 것은 어떻게 하면 ‘드로잉처럼 보이는’것이 아닌 ‘드로잉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드로잉의 어원을 살펴보라는 지인의 충고를 따라 사전을 뒤졌을 때 드로잉에 대한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주로 선에 의하여 어떤 이미지를 그려 내는 기술. 또는 그런 작품. 색채보다는 선(線)적인 수단을 통하여 대상의 형태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소묘’로 순화.

이런 정의에서 출발하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여 사실 내가 왜 드로잉 전시를 만들어야 하는지 조차도 무의미해지는 방법이었다. 선을 통한 이미지는 사실 대상이나 화면을 보는 이들이 선적으로 읽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드로잉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돌아가서, 나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는 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같이 생긴 어떤 것’을 묘사하기 위한 설명에서 사용한 뿌리, 가지, 이파리 등의 용어들은 각각의 특성에 따라 정식으로 붙여진 고유명사이고, 이 고유명사로서 나무를 설명했다면 그 속에서 실재 나무의 기능은 이미 설명되었다는 것이다. 즉, 정말로 정확히 설명하려면 “나무같이 생긴 어떤 것은 뿌리같이 생긴 어떤 것과 이와 연결된 나무기둥같이 생긴 어떤 것을 타고 여러 갈레로 뻗은 가지 같이 생긴 어떤 것과 연결된 수많은 잔가지같이 생긴 어떤 것에서 돋아난 푸른 이파리같이 생긴 어떤 것들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았을 것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는 기획 초기에 생각했던 드로잉의 모습은 ‘드로잉처럼 보이는 어떤 것’을 피하고자, 나는 그 역으로 ‘드로잉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집착하고자 하고 있었다는 갱각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 또 다시 두 번째 나무같이 생긴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의 심각해진 오류를 발견했다. 이 두 번째 서술은 통상적으로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심각하게 융통성 없는 엉터리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나는 첫 번째 서술에서 양분에서 출발하여 양분으로 끝나는, 아니 다시 양분에서 시작하는 나무에 대한 설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드로잉의 모습에 집착하기 보다는 드로잉이 어떤 양분을 먹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작용하고 다시 양분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 ‘드로잉’에 대해 훌륭한 역할로서 인식했던 것은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월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The Private Collection of EDGAR DEGAR>의 전시에서였다. 드가는 사실적인 묘사에 뛰어났던 화가 앵그르의 제자였고 그의 페인팅과 소묘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다. 앵그르는 페인팅을 완성하기 위해 등장인물을 완벽히 재현할 때 까지 반복적으로 인물의 모습, 특징, 자세에 따른 옷자락의 모습 등을 연습했고 능숙해진 대상에 대한 묘사를 페인팅으로 옮겼다. 마찬가지로 드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정확한 드로잉 묘사로 익숙해진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수많은 연습 드로잉이 선보였다. 이러한 정교한 관찰에 의한 정확한 묘사의 드로잉은 고전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경향을 발전시킨 드가의 화풍 속에서 너무나 중요하게 자리 잡은 요소였다. 그리고 그 드로잉 화면은 그 완성도와 부분적인 묘사의 디테일에 대한 시각적인 집중도를 유도하면서 더욱 화려하고도 아름답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것이 처음 드로잉이라는 매체에 대한 감동이었다.

형식과 개념 사이의 차이로 반영되기도 하겠지만, 현대 미술을 대하면서 드로잉을 위한 작업과 작업을 위한 드로잉의 차이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개념이 우선시 될 때에는 시용되는 드로잉에서의 완성도에 실망하면서 드로잉에 대한 기대가 점점 떨어질 무렵, 나는 드로잉 쇼라는 전시를 만들어야 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손재주를 피웠을만한 작업을 선호하는 개인적 취향이 있는 나에게 드로잉의 장르에서 흥미를 찾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완성도를 중요시 하는 작가들을 뽑았다. 그 완성도는 드로잉으로서가 아니라 드로잉의 형식이 차용된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로서 보여진다.

고가현은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도록이나 포스터 등의 작업을 함께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그녀의 작업은 자신이 디자인해야 하는 목적을 철저하게 연구한다. 어느 작가의 작품을 위한 도록이라면 그 작가의 현재 전시 작품 뿐 아니라 그 작업 경향이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지를 연구한다. 지금 벌어지려하는 전시가 어떤 성향인지 파고 든다. 그 속에서 주문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해 준다. 고가현의 이러한 습성은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제작해야 할지 스스로 연구해 내는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노네임노샵은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6명의 디자인 그룹이다. 그들은 매뉴얼을 그린다. 기능적인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가구를 제작하는 방법, 잔가지를 모아서 생명을 불어넣는 인형을 만드는 방법, 별을 바라보는 방법 등등 다양한 제작, 활동 등에 대한 매뉴얼을 그리고 만들어낸다. 그들은 이번 전시에서 역시 매뉴얼을 전시하게 된다. 그들의 작업실이 포함된 오래된 건물의 주소인 서교동 365번지 상인들을 대상으로 365 프로젝트라는 활동을 진행한 그들은 식물을 매개로 하여 네트워킹을 만들고 작은 지역 속에서 결속력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 시작과 과정을 보여준다.

김기라는 스토리 텔러다. 스스로 동화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동화와 같은 드로잉을 그린다. 그 드로잉은 사각 화면속에서 이야기의 추상화 작업을 하듯 단편적이고, 모호하기도 하며 때로는 익살스럽다. 그 이야기의 파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어나가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의도한 내용이던 아니던 보는 이의 상상력은 무한히 뻗어 나간다.

김시연은 바닥 설치를 하게 되는데, 가루를 바닥에 패턴 형식으로 뿌린다. 그녀의 가루 설치 작업은 너무 섬세하여 약간의 진동에도 그 패턴은 흩어지게 될 것이다. 김시연이 다루는 재료들은 하나같이 가볍고 연약한데, 그녀는 이 재료들로 오히려 접근할 수 없는 방어책을 만들고,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개인간의 연약한 연결과 미약한 소통, 그 소통 속에서 쉽게 부서져버리는 관계 등을 그려낸다.

클레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우스꽝스럽게 돌고 도는 형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순환의 형식을 보여준다. 연관성이 전현 없는 듯 하지만 연결되는 사물들의 관계는 같은 색과 같은 두께의 드로잉 선으로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면서 뜻 모를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의 작업은 즐겁고 부드러우며 가볍다. 선의 연결과 변화에 의해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되며 순환하고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박환희의 작업은 벽화 드로잉이다. 갤러리 벽에 그려지는 그녀의 작업은 계속되는 연속적인 반복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불규칙하면서도 엇비슷해 보이는 형태들의 나열 속에 또 다른 오브제들간의 연관성이 함께 시선을 옮겨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낸다. 이번 작업을 특히 거리에 세워진 나무들의 반복된 풍경을 인식하고 차용하여 공간 속에 재현해 내는 작업을 한다. 반복되지만 변화하는 선의 무수한 풍경이 보여진다.

한정림은 투명한 비쥬작업으로 팩토리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구석진 공간을 채우고 그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들은 별자리를 서로 연결해 낸 작업이며, 별 대신 반짝임을 공간 속에 뿌려놓듯이 설치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선으로 상상력 속에서 조합된 별자리의 이야기가 구석진 공간에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선을 이용하여 무엇을 표현한다는 것이 드로잉이라는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보려는 기대감으로 작가들에게 요구한 작업은 관객조차도 선적인 태도로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도록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전시 공간 속으로 들어온 관람객의 눈으로 그들의 작품을 흘러가듯 읽을 수 있는 작업을 볼 수 있도록 설치한다. 디자인, 건축, 페인팅, 설치, 애니메이션 등의 여러 분야에서 그 표현 방식들이 제시되겠지만 이들은 드로잉이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하고 흡수되고 순환하고 변형되어 각기 다른 결과물이 되는 흐름을 자연스레 만들어내다 보니 선은 다시 작업을 이루는 기초 단위로 흡수되고 작업의 모습은 드로잉의 본질을 떠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참여작가
고가현, 김기라, 김시연, 김희성, 노네임노샵, 박환희, 클레가, 한정림


 

Overview
Title : The Drawing Show
Opening Reception : Apr 27, 2007
Duration : Apr 27 - Mar 20, 2007
Hours : 11:00 a.m. - 6:00 p.m. (Closed on every Monday) 
Artist : Koh Ka-Hyun, Kim Ki-Ra, Kim Si-Yeon, Kim Hee-Sung, Nomenoshop, Park Hwan-Hee, Klea, Han Jung-Lim





전시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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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2-733-4883
이메일 : master@factory483.org
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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