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r e e T r e e |
2007.5.25_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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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개인전
전시내용
2007년 5월 25일(금)부터 6월 20일(수)까지 27일간 갤러리 팩토리 전관에서 작가 이명호의 'Tree'전이 개최된다.
본 전시는 갤러리 팩토리가 기획하고 중앙대학교 학술연구비의 후원과 (주)엡손, (주)포토피아, (주)세기판매의 협찬으로 이루어진다.
작가 이명호의 'Tree' 연작은 작가가 지난 3년 여간 진행해오고 있는 ‘사진행위’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의 시리즈이다. 작가는 사진의 재현행위와 매체의 제 문제를 환기 시키고 있다. 본 전시를 통해 재현예술, 특히 사진행위와 그 매개물에 관한 해체적 담론을 심히 사유할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전시 서문
일루전(illusion)과 ‘메타-피사체(meta-subject)’를 통한 사진행위의 자기인식
글_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드넓은 벌판에 거대한 흰 바탕의 캔버스 하나가 뜬금없이 서 있다. 그 중앙에는 화면을 가득 메운 나무 한 그루와 그 그림자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캔버스의 주변은 얇은 구름으로 덮인 하늘과 잔디, 먼 곳으로 물러나 작아 보이는 한 두 그루의 나무들이 있다. 이미지 전체는 낯설고, 다소 초현실적인 인상마저 풍긴다. 이명호의 대표적인 작업 <나무, tree>연작 중 한 점이다. 하지만, 일견(一見)으로도 나무의 묘사가 지나치게 정교한 것이 조금 이상하다. 이윽고 이미지에 한 발 다가서면서 접하게 되는 사실의 느낌은 당혹스러움에 가깝다. 나무는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실제다. 흰 캔버스는 실제의 나무 뒤에 설치된 거대한 천이다. 반전, 약간의 조작과 착시에 의한, 하지만 늘 그렇듯 해롭지 않으며 흥미로운 종류의 속임수다.
* 물리적 격리(physical isolation)와 그 시각적 확증(visual confirmation)
이렇듯, 이명호는 피사체를 그것의 고유한 환경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실제 나무’와 ‘그려진 나무’, 실체와 이미지의 차이를 교란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명백한 교란이다. 이 교란에 의해 규범화되고 고착된 우리의 인식체계의 한 부분이 흔들리고, 강령적 이해가 도전받게 될 것이다. 이명호의 작업이 완성되는 과정은 크게 다음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피사체의 선택 - ?피사체의 분리(메타-피사체) - ?촬영 - ?분리의 확증.
이명호의 작업의 독특한 변별성이 ?와 ?, 곧 피사체의 분리와 분리의 확증에 의하는 바, 그것이 우리가 우선 주목해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먼저 피사체를 그것의 환경적 조건으로부터 인위적으로 격리시키는 ?과정을 보도록 하자. 이는 선택된 피사체의 뒷부분에 (상당한 물리력을 동원해) 정방형의 배경역할을 하게 될 거대한 흰 천을 수직으로 설치함으로써, 피사체를 그 고유의 맥락과 동떨어진 중성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에 의해 대상은 ‘분리된 오브제’, ‘모호한 피사체’가 되며, 비평적 성격을 수반하는 ‘메타-피사체’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함으로 이명호의 사진행위는 그 자체의 정체성에 혼돈과 해체를 수행하게 될 결정적인 준비를 마친 셈이 된다. 이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되는데, 모호함과 혼돈의 텍스트는 아직 완전히 쓰여진 상태가 아니다.
?의 과정은 이 분리와 탈맥락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 사진행위 자체에 야기된 정체적 혼돈을 확증하는 과정으로, 피사체의 차원에서 행해진 분리를 이미지의 차원에서 확증하는 과정이다. 즉, ?에 의해 물리적으로 개입된 배경막의 촬영된 이미지를 디지털적으로 처리해 일루전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이제 하얀 정방형의 배경은 흰 캔버스의 표면이 되고, 실제의 나무는 그 위에 그려진 이미지로 보이게 될 것이다. ?와 ?의 이 이중의 과정, 분리의 물리적 시도와 디지털적 확증과정을 통해 사진행위는 그 전통적인 규범으로부터 미끄러져 나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불안정한 것이 된다.
사진행위에 던져지는 도전은 심층적이다. 왜냐하면, 사진행위는 이제 실체가 아니라, 실체로부터 격리되고 탈맥락화된 변종,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니며, 이미지로 인식되면서 이미지는 더더욱 아닌 ‘모호한 실체’를 다루는 수상쩍은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의해 하나의 우선적인 전제, 곧 사진행위가 현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실체적 행위라는 전제가 흔들리게 된다. 이는 사진이 ‘어떻든 현실을 다루는 매체’라는 미학적 알리바이 안에 더 이상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가 이명호의 사진들이 사진행위 자체를 문제삼는 비평적 텍스트가 되는 지점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사진행위에 관한 일련의 해체적 담론’으로 규정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호의 ‘사진-텍스트’는 보다 다층적인 독해를 요구한다. 단지 ‘사진이 실체만을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는 반박의 담론만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가가 ‘이미지와 실체를 끊임없이 혼돈하는’ 사진의 지적 미숙을 문제삼는 방식으로서, 즉 작가는 실체를 이미지로 보도록 하는, 일루전이라는 또 다른 혼돈에 의해 사진행위의 혼돈을 적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순 없겠지만, ‘오랑케를 들어 오랑케를 제압하는 것(以夷制夷)’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유효하다!
이는 작가의 근래의 연작 <나는 내 눈으로도 믿을 수 없다, I could not believe my eyes either> 에서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피사체가 나무인 대신, 화상채팅에 몰입하는 소녀들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작가는 이번에도 채팅 중인 그녀들을 실제상황 속의 그녀들로 의심없이, 그리고 신속하게 믿어버리는, 규범화되고 도식화된 믿음 자체를 문제삼는다. 이 믿음을 다시 담론의 장으로 되돌리기 위해, 피사체의 탈맥락화와 이미지의 디지털 처리라는 이중의 과정을 진행시키는 것도 이전과 다르지 않다. 소녀들은 분명 ‘그 때’ 실제로 채팅 중이던 그들이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 시.공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신중하게 연출되어 있다. 이 연작에서 피사체의 문맥을 교란하는 방식은 격리보다는 상황연출에 더 근접해 있다. <나무, tree>연작이 피사체를 탈맥락화하고 격리시켰다면, 여기서 피사체는 탈맥락화를 감추기 위해 의사맥락화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반적인 채팅용 웹카메라의 특성을 규정하는 작은 렌즈와 접사각, 거리 등이 촬영에 반영되었다. 바로 이와 같이 허구적 ‘비실체성’에 의해 실체를 다루는 사진의 진실성에 시비를 걸고, 사진행위 자체를 담론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전적으로 비실체성의 대변인 것만은 또 아니다. 그것이 실제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들은 실제로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피사인 동시에 메타-피사체고, 실체인 동시에 연출된 실체이기도 하다. 작가의 메타-피사체에는 이중, 삼중의 복선이 깔려 있다. 그것은 우리를 규범에서 해체로, 이미지에서 실체로, 강령적 믿음에서 회의로 끌고 다닌다. 우리는 혼란을 통해 혼란을 목격하고, 착시를 통해 착각을 자각하게 된다.
* 일루전(illusion)과 메타-피사체(meta-subject)
사진행위 자체에 관한 이명호의 해체담론은 역설적이게도 일루전(illusion)에 의해 주도된다. 지난 세기 내내 일련의 주류 네오플라토니즘(neo-platonism)적 관념이 (실체의 이름으로) 시지각 영역을 폄하해 왔다는 점을 환기할 때, 이는 매우 흥미로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착시, 곧 전형적인 시각의 원죄에 해당하는 그것이 사진행위의 실체를 규명하는 담론의 한 중심을 관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3차원인 척 하는 2차원, 곧 일루전의 문제는 지난 수 세기 내내 서구미술의 핵심가치를 저해해 온 감질나는 훼방꾼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에 대한 모던회화(modern painting)의 태도는 도덕적인 경직으로 일관됐고, 따라서 그 반응들은 실로 신경질적이었다. 결국 모던회화는 차라리 ‘평면성’을 집착적으로 도그마화 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스스로에 대한 자각에 의해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가장 회화적인 것이 되는 길을 택했다. 회화의 근대적 자기인식이 자라는 동안, 사진은 사물을 가장 잘 재현하는, 효율적인 정보전달과 매체적 기능을 중심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진 역시 자신의 매체적 숙성의 보이지 않는 대척점, 곧 주체로서의 결핍을 되돌아보는 데 도달해야 했다. 매체란 결국 탈주체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회화가 3차원인 대상과의 상관성 안에서 2차원인 자신을 되돌아보았던 것처럼, 주체성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들과의 상관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회화가 앞서 떠난 의구심이 넘쳐나는 자기인식의 빈자리는 곧 사진의 몫이 되었다. 사진은 자신이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물의 재현에 관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아픈 자기인식에 도달해야 했던 것이다. 실체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불완전한 개입’을 스스로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곳이 매체로서의 사진을 넘어 주체로서의 사진으로 나아가는 기로, 곧 이명호의 작업이 위치한 경계인 것이다. 이 인식이 작가로 하여금 피사체를 메타-피사체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즉 사진이 실체를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바로 그 인식에 의해 사진과 실체와의 관계를 재맥락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했던 것이다. 즉, 피사체와 사진, 사물과 이미지의 관계를 상호텍스트화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작가의 이 상호성이야말로 사진행위를 사물의 역사에 주체적으로 관여시키는 그만의 독특한 방법론일 것이다.
<나는 내 눈으로도 믿을 수 없다> 연작에서 작가의 이러한 방식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녀들은 분명 해체적인 방식으로 연출되어 있다. 원조건으로부터 격리되었고, 디지털적 처리로 이미지는 더욱 사실로부터 멀어졌다. 이는 매체로서 사진의 맥락에서 볼 때 위반이다. 재현의 탁월한 귀재로서의 사진의 규범에 대한 뒤틀기다. 하지만, 이 위반과 뒤틀기를 통해, 사진행위는 자신의 ‘매체성, 종속-재현성’으로부터 벗어나 주체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계기를 마련한다. 사진은 사물의 불완전한 대변이 아니라, 그 대변을 반성적으로 되묻는 성찰적 차원을 획득한다. 비로소 사진이 자신의 결핍을 미학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명호는 메타-피사체는 사진행위를 문제삼는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 사물의 역사 자체에 관여하는 데도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내 눈으로도 믿을 수 없다> 연작에서 작가는 그녀들을 일종의 안개효과에 의해 구체성을 상실한 것이 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실체의 도약’이랄 수 있는 차원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이에 의해 그녀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정체성에서 후퇴하고, 그만큼 시대적 전범의 위상을 확보한다. 그녀들은 더 이상, 한 구체적인 장소와 셔터 속도라는 시간대에 갇히지 않는다. 그녀들은 이미 동시대의 셀 수 없이 많은 ‘그녀들‘의 대변자로서, 특별히 우리 사회의 아이콘으로서 거기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사진이 불안전한 방식으로 현실에 관여한다는 인식을 경유해, 불안전한 현실 자체를 다루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이명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비평적이고 텍스트적이다. 그는 끊임없이 실체의 역사로부터 소외되는 제도화된 사진행위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바로 그 문제제기에 의해 사진행위는 자기인식을 생성하고 보강한다. 사진이 사실을 다룬다는 믿음을 뒤흔들므로써, 진정으로 사실을 다룰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이명호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사진행위는 지금도 매체로서의 기능을 넘어 주체적 관여로 나아가는 사진들의 경로를 경쾌하게 확장시키고 있다.
작가소개
학력 :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박사과정
수상 : 사진비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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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개요
전시제목 : 'Tree' - 이명호 개인전
전시기간 : 2007년 5월 25일 (금) - 6월 20일 (수)
전시장소 : Gallery FACTORY
전시개막 : 2007년 6월 1일 (금) 오후6시
기획 : Gallery FACTORY
후원 : 중앙대학교
협찬 : (주)엡손, 포토피아, 세기판매
Overview
Title : Tree
Opening Reception : June 1, 2007
Duration : Mar 25 - July 20, 2007
Hours : 11:00 a.m. - 6:00 p.m. (Closed on every Monday)
Support : Chungang UNIV
Artist : Lee My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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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www.factory483.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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