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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ART | 김지은의 Art & the City] 묵직한 유머, 진지한 성찰 
기사입력 2009-04-01 17:43 

올해 벚꽃놀이 계획은 세우셨나요? 언젠가 일본 기상청이 지진도 태풍도 아닌 ‘벚꽃 개화시기’를 잘못 예보하는 바람에 엄청난 항의를 받고 사과까지 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맘때쯤 한국 뉴스에도 벚꽃 이야기가 꼭 나오죠? 이곳 뉴욕은 4월 초 브루클린 식물원에서 열리는 벚꽃축제가 매우 유명합니다. 저는 축제가 열리기 전, LA의 한국문화원에서 올해 첫 벚꽃을 보고 왔어요. 

한인커뮤니티 최대 규모의 미술후원단체 KAFA(Korea Arts Foundation of America)가 주최한 미술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비디오 아티스트 이재이 씨의 전시회를 보러 간 길이었죠. 그곳에서 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리며 지상에 수북이 쌓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작품을 보노라니,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꽃그늘이 한없이 그리워졌어요. 벚꽃은 필 때는 물론 땅 위로 질 때마저 ‘만개’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작품 ‘Cherry Blossoms(벚꽃)’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철썩같이 믿었던 꽃잎들이 실은 씹다 뱉은 분홍 풍선껌이라더군요. ‘기만당했다’는 배신감이 들었죠. 

작가는 여러 사람을 동원해 씹은 껌을 사방에서 뱉는 풍경을 촬영했는데요, 인파가 북적이는 벚꽃놀이 도중 보도블록 위에서 누군가 뱉은 껌을 밟았을 때의 낭패 본 기분이 들었어요. 누가 그리고 무엇이 우리에게 껌 뱉는 풍경을 벚꽃 풍경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일까요? 

대답을 찾기 위해 이재이의 목욕탕 연작인 ‘Swan’(백조, 2007), ‘Polar Bear’(북극곰, 2007), ‘Niagara’(나이아가라, 2008)를 살펴보기로 하죠. 작가는 백조의 호수와 북극곰을 그린 공중목욕탕 벽화 앞에서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마치 백조처럼, 북극곰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유유히 헤엄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그린 벽화 앞에서는 관광객처럼 푸른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실제 폭포를 보듯, 가이드의 손끝을 따라 일제히 고개를 움직입니다. 주로 서울 변두리 지역에 남아 있는 조악한 목욕탕 풍경화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너무도 진지한 인간 백조, 인간 북극곰 그리고 관광객들. 이들이 연출하는 우스꽝스러운 목욕탕 풍경에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토록 욕망한 대상들이 옷을 벗은 채 그 보잘것없는 육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의 무의식 속으로까지 파고든 집단적 문화의식을 재현하는 무대로 공중목욕탕을 선택한 작가의 비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요, 가장 사적인 영역인 목욕이 집단적으로 실현되는 ‘공중목욕탕’은 개인의 은밀한 욕망마저 실은 오랫동안 믿어져온, 그래서 누구도 더는 의문부호를 달지 않는 허구적 이미지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축돼왔음을 보여주는 데 최적이기 때문이죠. 몸에서 때를 벗겨내듯, 보이는 그대로와 그동안 믿어온 것을 분리하는 작가의 묵직한 유머와 진지한 성찰은 관객들로 하여금 대상 없는 욕망의 실체를 잠시나마 엿보게 합니다.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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