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와룡공원에서 출발해 북악산 성벽을 따라 걷다가 창의문으로 나오면 금방 효자동이다. 효자동에 도착하면 땀도 식히고 목도 축일 겸 들르는 카페가 있다. 선이 단순한 앤틱가구들과 최소한의 인테리어가 특색인 이 카페는 작가 이미경이 운영하는 곳으로, 여기에는 쓸모 있는 가구들을 눈여겨보고 간혹 수집도 하고 또 실제로 제작해온 작가의 생각과 태도, 취향이 면면이 스며들어 있다.
카페 바로 옆에 갤러리 팩토리가 있다. 일층 전시장에서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이층 전시장 한 귀퉁이에 사무공간이 끼어있다. 카페에 갈 때마다 갤러리 디렉터가 카페에서 직원이나 손님들과 사무를 처리하는 광경을 보면서 사무실이 비좁긴 한가보다 했다. 듣자하니 이 갤러리는 작품매매보다는 외부의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기획하면서 생긴 수익으로 전시를 개최한다고 한다. 과부하가 걸리는 이런 기획 일들을 처리하기엔 턱없이 협소한 이웃 갤러리의 사무공간을 위해서, 작가 이미경은 이번 개인전에서 기능적이면서도 구축적인, 그러니까 확장과 집적, 축소가 용이한 조합형 가구를 제안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가구나 제품을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또 미술가가 용도가 있는 물건들을 제작하는 것도 요즘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전시장에서 만나는 가구는 기능성이 떨어지거나 장식이 과잉되거나 관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이미경이 이번 전시에 출품한 책상과 수납장은 해당공간의 생산성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간단한 모듈과 몇 가지 색상으로 산출되었다. 특별히, 전시장 한편에는 작가가 집어온 버려진 나무 책상이 놓여 있는데, 책상 위의 작은 노트북에서는 그가 도큐멘트한 슬라이드 수백 장이 돌아가고 있다. 작품제작 때문에 작가가 자주 들르는 을지로, 청계천, 남대문 등의 작은 점포와 노점에서 목격한 각종 수납공간과 가구 등을 찍은 사진들인데, 여기에는 생활의 발명가이자 장인, 달인들이 조립해 애용하고 있는 기발하고도 감동적인 자작 제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가 자신의 미적 공간을 구획하고 매개하고 운용하는 아이디어를 착상하게 된 계기들을 이 사진들은 ‘색인’해준다.
갤러리에서 나와 살펴보니 한국미술 자료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달진의 연구소를 비롯하여 동네 곳곳에 갤러리와 서점, 카페 등 예전보다 훨씬 늘어난 문화공간들이 눈에 띈다. 아마도 효자동은 인사동-사간동-삼청동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주변으로 확장되고 있는 ‘문화지구’에 이미 편입된 게 아닌가 싶다. 퍼뜩, 여기도 머지않아 시끄럽고 비싸고 가짜로만 가득 찬, 또 다른 문화 개발지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요즘의 금융위기와는 걸맞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바야흐로 한국사회에서는 돈을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윤리가 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장)
[백지숙의 미술산책] 문화지구의 실속과 겉멋
서울신문 10월 28일자 26면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