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경제: 이재이개인전

seong 2016.04.01 14:41 Views :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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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작가 이재이가 보여주는 참신한 미디어아트-갤러리팩토리 


뉴욕을 주무대로 활동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 이재이(34)는 올 가을 가장 바쁜 작가 중의 한명이다. 일본, 프랑스, 한국 세 곳에서 10월~11월 작품전을 갖고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이 작가는 ‘제1회 고베 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됐으며, 파리 마레지구의 갤러리 가나보부르에서의 개인전을 지난 11일 오픈했다. 또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갤러리팩토리에서도 작품전을 열고 있다. 


이재이의 작품은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 지난 2001년 ‘예술가의 책’이라는 작품을 통해 조형적이고 개념에 기초한 작업을 보여준 것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에는 평면 스크린 모니터와 대형화면에 프로젝터로 보여지는 비디오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이번 서울전에서 이재이는 제작과정에서부터 관심을 모아온 ‘백조(Swan,2006)’와 ‘북극곰(Polar Bear,2006)’을 각각 싱글채널 비디오와 사진으로 첫선을 보였다. ‘목욕탕 프로젝트’로 알려지기도 한 이 작품은 대한민국 서울과 변두리에 남아 있는 근현대 공중목욕탕의 벽화(북극곰과 백조가 그려진 키치적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 





작업 초기부터 레디메이드 개념에 주목해온 이재이는 이번의 ‘백조’와 ‘북극곰’을 미리 디자인된 세트와 함께 목욕탕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작가 스스로 하얀 타월을 머리에 감고, 한마리 백조처럼(또는 북극곰처럼) 목욕하는 장면을 찍은 백조, 북극곰 연작은 퍼포먼스와 비디오 영상을 겸한 프로젝트성 작품이다. 이는 또 목욕탕이라는 레디메이드 배경을 사용함으로써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에 대한 문제제기와 목욕탕의 실내장식의 사회적 미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연작은 작가가 즐겨 다뤄온 주제인 ‘욕망’의 FAKE와 FACT를 작가 스스로 벽화와 동화된 백조가 돼 연출했다는 점에서 참신하면서도 그 발상이 매우 흥미롭다.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이번 작품전에는 공간성을 확대시키는 사운드 아트가 멋진 조화를 이뤄 큰 호응을 얻었던 이재이 작가의 대표작 ‘음표들 Notes’이 8채널 비디오와 사운드, 사진으로 함께 전시되고 있다. 멀티채널 비디오로 퍼포먼스, 오디오작업, 영상을 포함하고 있는 ‘음표들’은 고무줄하는 소녀들의 동작을 통해 오선지 위에 음악이 펼쳐지는 매우 색다르면서도 매력적인 작업.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인 라울 자무디오(Raul Zamudio)는 “이재이의 ‘음표들’은 무용, 음악, 비디오, 설치와 회화, 조각의 영역을 망라하는데 이들 분야의 배치가 결코 과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세밀함과 침착함으로 개념화됐다. ‘음표들’은 또 신선하고 날카로우며 꼼꼼한 작품인 동시에 자연스럽고 활기차게 느껴진다 .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재이의 예술적 재능을 증거해준다”고 평하고 있다. 


한편 이재이 작가는 목욕탕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작업노트를 썼다. 다음이 그 일부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백조는 없다. 없음으로만 존재한다. 백조가 사는 곳은 벙어리가 된 어린 공주가 밤새 뜨개질을 하는 동굴이 있는 곳이거나 무지개가 뜨고 동시에 꽃이 피는 찾을 수 없는 호수 같은 곳이다. 



어느 날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그곳의 벽화가 눈에 띄었고 나는 그 때부터 그림구경을 하러 목욕탕을 순례했다. 오래된 공중목욕탕의 벽화들은 모두 이국적이다 못해 친숙한 키치적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목욕탕이라는 일상적 공간이 견딜 수 없게 이상한 곳으로 느껴지곤 했다. 






목욕탕의 벽화처럼 ‘친숙하게 이국적인 곳’은 우리의 집합적 기억 어느 언저리 외엔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집합적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이나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 대상이나 풍경은 조야한 우리의 욕망의 재현에 다름 아니다. 내 작업은 이러한 비실재성들을 숨김없이 폭로함으로써 우리가 기억하며 욕망하는, 욕망의 대상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를 확인시킨다. 동시에 예술의 대상물(아트 오브제)에 미리 예상된 이미지들을 가볍게 뛰어넘어 상상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내 작업은 바꾸어 말하면 욕망을 이미지로부터 떼어놓는 일이다. 인공물을 제거함으로 원래의 물성만을 드러낸 물질은 이미지 없는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이재이 작품전은 멀티채널 비디오, 뉴 미디어, 사진을 오가며 신선한 아이디어와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 호평받고 있는 이재이가 국제현대미술계에서 자신의 조형세계를 다져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전시는 18일까지. 02)733-4883.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7/11/06/200711060318.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