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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에 실린 전시 프리뷰 기사입니다. 
원문을 보고싶으신 분은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609181329000048
를 방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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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의 요즘 작업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그것을 통해 동시대를 은연 중에 풍자하는 톡 쏘는 맛이 있다. 거대담론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겐 싱거워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구체적이고 감성적이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22일부터 10월15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이미혜(38)의 작업은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시제목이자 프로젝트명이기도 한 ‘슈퍼이베이어(super-ebayer)’의 콘셉트는 작가가 2003년 탑승한 독일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슈테른(Stern)이라는 잡지를 통해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가 독일에서 거둔 엄청난 성공에 관한 특집 기사를 읽게 된 작가는 독일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인터넷 경매에 참여한다. 

평소 중고 물건들을 싼 값에 사고 파는 벼룩시장에서 쇼핑하기를 즐겼던 작가는 앉은 자리에서 밤낮으로 벼룩시장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져버린다. 

경매는 수많은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낙찰을 받아야 하는 숨막히고 박진감 넘치는 일종의 게임. 소유욕과 승부욕이 강했던 작가는 결국 뛰어난 승률을 올리는 경매 낙찰자(슈퍼이베이어)가 되었지만 작업할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작가는 자구책으로 아예 경매와 관련된 자신의 생활 자체를 작업의 모티브로 끌어들이게 된다. 우선 갖고 싶었지만 아쉽게 놓쳐버린 물건들을 드로잉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실패를 대변하는 드로잉된 물건들과 자신의 성공을 대변하는 낙찰 받은 물건들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일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에 참여했다.

이번 갤러리 팩토리에서는 독일에서의 작업개념을 보다 확장시켜 보여준다. 낙찰가와 함께 실제 생활에 쓰이고 있어 전시가 불가능한 것들은 사진으로 전시된다. 경매잡지 내용이 빔 프로젝터로도 상영될 예정이다. 

드로잉은 판매자들이 올렸던 물건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작업하여 윤곽선만을 인쇄한 후, 수채화 물감으로 옅게 칠한 것이다. 경매가 실제 진행되었던 날짜와 시간 순으로 전시장에 걸린다. 각각의 드로잉에는 작가의 서명 대신 정확한 경매낙찰시각과 경매번호가 쓰여져 있다.

작가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각기 다른 역할을 ‘super-ebayer, super-wife, super-artist’라는 명칭으로 새겨 넣은 ‘3종 명함 세트’도 선보인다. 작가이자 아내, 그리고 경매를 즐기는 구매자라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세 가지 역할 모델에 각기 슈퍼라는 형용사를 붙여 ‘슈퍼이베이어’, ‘슈퍼와이프’, ‘슈퍼아티스트’라고 명명함으로써 가정에서, 직장에서, 취미에서 모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를 원하는, 그래서 ‘슈퍼우먼’ 신드롬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지름신의 유혹을 얼마나 자주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쇼핑이라는 일상적인 행위에 대한 작가 자신의 고백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과 텍스트 결합 작업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바버라 크루거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구를 담은 작품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과다한 쇼핑이나 소비에 얽매인 현대인의 초라한 자화상을 고발하는 계몽적인 내용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박스 안에 담겨진 중고품들을 통해 그것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트렌드, 시대 상황 등을 유추해 보고, 그것을 구입하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취향 등을 짐작해보는 과정은 최신 유행을 맹목적으로 좇아가기에 급급해하며 새로운 물건만을 선호하는 소비 형태와 비교할 때 낭만적인 여유와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 젊은 작가의 작업이 현대미술의 한 지형도를 짐작케 해 준다. (02)733-4883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2006.09.18 (월)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