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practice_workshop03_01.jpg

 

어떤 큐레이터의 프랙티스 Practice by Curation 워크숍 시리즈3

시간을 구성하는 연습

강연 : 김해주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 속에는 무수히 많은 시간표가 만들어 집니다. 이는 전시를 만드는 과정의 시간표이기도 하고, 전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시간표이기도 합니다. 전시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지만, 시간 안에서 구성되는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간 기획한 <고래, 시간의 잠수자>(2011), <모래극장>(2012), <Memorial Park>(2013), <결정적순간들>(2014) <안무사회>(2015) 등의 예시를 통해 전시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실천"과 이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했던 "실행"들이 무엇인지 얘기나누려고 합니다.

 

03_practice_workshop03_03.jpg

 

03_practice_workshop03_02.jpg

 

2015년 8월 26일 강연 녹취정리

전시기획의 시작
시각적 결과물로 완성되는게 아니라, 내가 경험하는 전시, 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경험이 달라지는 것을 상상.
모든 것은 질문들 안에서 전개해 가고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시 경험이라는 것이 공간을 기반하지만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전시가 가능하지 않을까? 
공간에 배치된 사물의 총합으로서 전시를 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조합하는 것도 전시라고할 수 않을까?
여러경험들이 합쳐져 있고, 펼쳐져 있는것도 보이는 것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리크리라바니자 2005 파리 회고전
15년의 작업들을 정리하는 형식의 전시.
수도원건물에서 전시했었는데 아무것도 없음에 충격.
모든 회고가 이야기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작가의 과거 작업들에 있어 지난 것을 보는게 아닌 이야기로 정리해주는, 
다시 회고를 하는, 작품의 본질자체가 그 순간에 있었던 경험이었다면 그 경험에 죽은 결과물들, 
사진이나 도큐먼트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경험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대체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전시를 통해 봤던 것 같다.


국립극단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극장이라는 공간의 차이에 깨달음.
연극 무용 퍼포먼스 극장이 아닌 미술관에 초대하는 경우와 어떤 작업은 반드시 극장공간이 필요한 작업이 있음.
전시라는 시간은 계속 지속되는 시간이고, 극장이라는 시간은 한시적인 시간.
3주 주말마다 퍼포먼스를 가지고 실험
연극, 퍼포밍아트에 대한 궁금함
극장에서의 전시. 여러 시간들을 각각 경험하고 총체적인 경험을 유도하는 전시이다.


액토플라즘 (심령사진같은 것)
작가들에게 퍼포먼스 끝날 때마다 무엇이어도 좋으니 각자의 액토플라즘을 남기라는 요청.
시각적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그 무언가가 중첩되어 쌓이는 형태들. 과정안에서 처음 중간 끝, 시간을 지속적으로 쌓았다는 생각!


퍼포먼스의 아카이브의 한계
아카이브라는게 공연예술으로는 잡을 수 없는, 한 번 하면 사라지는 일회성 안에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퍼포먼스의 아카이브라는건 사실상으론 불가능하다.
존재하는 것과 소실되는것 사이에 있는것.
퍼포먼스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을 수 있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을 소환하지 못한다.
연극이나 퍼포밍아트를 정의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김해주에게 중요한 것은 ‘관객 경험’이다. 
같이 느껴야 발생하는 것이 작품이고, 관객의 영향을 받아서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그 경험이 한 덩어리일 때 이 것을 포착하거나 굳혀서 만들 수 는 없다. 
기록물이 작업물을 대체하는 상황이 미술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긴하지만, 
기본적인 착각은 퍼포먼스는 아카이브로 만들어질 수 없다. 그 아이디어부터 시작.


퍼포먼스의 존재론 - 전시로 승화
그러면 퍼포먼스는 어떻게 기록될 수 있을까? 다시 재생될 수 있을까?
퍼포먼스가 어떻게 기록되고 재생할 수 있는가는 기억와 경험을 어떻게 기록하고 재생하느냐와 같음. 
그래서 우리가 하고있는 많은 작업들의 성격을 보면 기억의 재생과 연관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식으로 꾸려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매게가 되어 전시가 진행됨.
전시장과 극장의 큰 차이가 공연 예술에서 관객이 되게 중요하다고 했던게 일단 조건자체가 다름.
전시는 보는 시선을 결정할 수 있지만 공연장은 어두운 공간에서 앉아있게 만든다. 
그 것은 굉장히 ‘보는' 조건으로 만드는 것이고 종영이 가해진다는 시간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 
극장이라는 것이 한 공간에서 이런 조건들이 주어지는 것. 나와 관객이 대면하게 되는 것이고 보여주는 사람은 시간에 대한 책임을
져야되는 것. 그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 끌고나가느냐, 전시와 다르게 어떻게 압축해서 보여줄 것인가. 정말 어려운 일.


메모리얼 파크
퍼포먼스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문제.
시간과 전시를 배열을 할까.
전시장이 끝이 아니었음 좋겠다로 출발. 
허황되지만 머리에 전시를 심고싶다고 생각함. 안무가들의 스코어. 텍스트를 보고 스코어가 발생. 행간이 있는 글들,
좋은 책을 읽으면 사건이 머리속으로 발생, 전시도 보여지는 것 말고도 읽거나 단서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전시가 구현될 수 없을까?
메모리얼 파크 : 어떤 사건을 기념하고 기록하는 공간. 산책, 사색할 수 있고, 아주 작은 지표가 될 수 있는 단서들만 모여져 있어서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자기의 다른 생각들도 할 수 있고, 구체적인 주제보다 전체 자체가 산책의 기능이었음 좋겠다. 
어떤 특정한 기억에 재생을 위해서 비워진 공간.


전시의 시작 : '공간 - 기억'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
모티프 : 차학경의 딕테
무엇을 행위하게끔 되는 문장. 사건이 일어나게끔 만드는 문장.
최선은 동작을 상상하면 좋겠다는 이유에서 시작.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사라지는 것이 퍼포먼스라는 매체가 갖고있는 뚜렷함.
하나 하나의 질문들 때문에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


글쓰기의 중요성
생각은 정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으로 비로소 생각이 정리가 된다고 생각함. 드러나게 됨에따라 책임이 일고, 모든 일들에 동력이 된다.

프랙티스
지금까지는 어떻게 시간을 구성하고 다시 기억들을, 경험을 불러일으켜서 고민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을 공간안에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극장과 갤러리에서 보여주는게 어떻게 다를까. 여러 질문을 하는 것.
그것을 할 수 있게 해줬던 근육은 너무 괴롭지만 글을 써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03_practice_workshop.jpg